가을의 시작이라는 처서(處暑)가 어제였지만 낮 최고기온이 33도로 폭염이 이어져 24절기가 무색했다. 기상청은 26일 이후부터는 더위가 꺾이겠다고 예고했지만 너무 많이 틀려서 믿음이 안 간다. 기상청 오보는 올여름 내내 계속됐다. 11∼14일 절정에 이를 것이라 했지만 수은주는 더 치솟았고 서울의 경우 폭염이 꺾이는 시점을 16일→18일→22일→24일로 계속 미루는 오보 행진을 벌였다. 장맛비를 예보해 놓고 불과 3시간 10분 만에 “비가 없을 것”이라고 뒤집은 일도 있었다.
▷더위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는 자연재해다. 2003년 유럽에서만 7만1310명, 2010년 러시아에선 5만5736명이 죽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온열질환자 수가 이달 7일 현재 1160명(사망 10명)으로 5년간 연평균 수치(1128명)를 넘어섰다. 가축, 물고기 양식장은 물론이고 밭작물도 타들어 가고 있다. 비가 와야만 더위도 한풀 꺾이고 밭작물도 원기를 회복할 것이다.
▷기상청은 올해 기압계 패턴이 지난 30여 년간 겪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이례적인 데다 북태평양 고기압과 중국발 더운 공기 유입 같은 변수들이 많아서 예측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기상청 오보는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 고문’을 했다. 그래도 올해만큼은 532억 원짜리 슈퍼컴퓨터 4호기가 2월부터 가동되고 세계 최고 소프트웨어 ‘수치 예보모델’ 프로그램이 가동돼 다소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는 것을 보니 기계 문제보다 사람 문제가 큰 것 같다.
▷2014년 기상청의 납품 및 인사 비리가 터져 나오자 비리척결단까지 출범해 “특정 학맥으로 연결된 기피아(기상청 마피아)가 있다”며 이를 깨려는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납품 비리가 계속됐다.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데이터를 읽고 해석하는 예보관 능력이 떨어지면 무용지물이다. 기상청이 오보를 남발하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들여다보는 날씨 앱은 정확할 때가 많았다. 기상청의 무사안일을 깨려면 민간 부문에 기상영역을 더 활짝 열어줘야 할 것 같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