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채트윈 ‘파타고니아’
이 책은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땅을 여행한 한 영국 작가의 조용한 기록이다. 미국 작가 존 업다이크의 찬사를 빌리면 ‘종이 몇 장으로 세상을 담은 작가’가 저자다. 문학 픽션과 여행 기록 논픽션의 둘레와 경계를 짓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파타고니아는 지도에 정확히 표시돼 있지 않은 땅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의 남부까지 약 90만 km²의 황야를 파타고니아라고 부르곤 한다. 저자는 1974년과 1975년에 그 땅에 있었다. 이곳은 코넌 도일의 ‘잃어버린 땅’의 무대이며 셰익스피어의 ‘태풍’에 영감을 줬고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이 거주하는 땅이다. ‘종의 기원’ 이전에 ‘비글호 항해기’의 저자이며 여행가로서의 찰스 다윈에게 호기심을 자극한 땅이기도 했으며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이 여행기의 매혹은 황량한 풍경을 압도적으로 묘사하고 그곳을 상상하게 만드는 탁월함에 있지만, 불쑥 그 황량함 위로 다양한 인간이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100여 개 장에 걸쳐 고대 동물의 기이한 스토리, 중세 항해시대 이야기,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변천사를 탐험한다. 방랑하는 수많은 이주민, 동굴에 사는 토착민의 사연, 무정부주의자와 망명자, 미국의 무법자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나는 스냅사진을 찍듯이 글을 쓰기로 했고, 그 글은 매번 하나의 숏 같은 것이 될 터였어.”
좋은 여행기엔 그곳으로 가는 길이 친절하지 않다. 정해진 길로만 간다면 헤맬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그런 불친절함이 서운하다면 당신의 여권에 찍혀 있는 발자국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걸었던 길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있는가. 우두커니 주인이 없는 농가의 부엌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흘리던 눈물과 침낭에 아직 남아 있는 흙냄새를 친절하게 설명하기는 곤란한 것이다.
김경주 시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