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담당 영양사와 근무자가 서로 협력해 일 잘하던 학교에서조차 고추장 한 통 살 때 교감 교장의 결재를 받는 번거로운 절차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해도 학부모는 ‘우리 애 먹는 밥은 괜찮을까’ 하고 늘 노심초사해야 하고 급식소 근무자 전부가 도둑질하는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는데도 학원이나 어린이집 유치원 통학버스에 치여 죽고 갇혀 있다 사경을 헤매는 아이가 속수무책으로 쏟아지고 있다. 전남 여수의 한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두 살배기 아이가 치여 숨진 건 이달 10일이다. 보름 가까이 지난 24일 여수시청 담당과에 물어보니 “아직 경찰에서 수사 결과가 통보되지 않아 행정처분은 못 했다”고 했다. 이런 사고를 내면 폐원 또는 1년 이내 운영정지가 가능하다고 법에 명시돼 있지만 차근차근 절차를 밟느라 사고를 낸 어린이집엔 아직 별일이 없다. 참 관대하다. 아이가 죽었고, 누가 뭘 잘못했는지 다 나와 있는데 경찰에서 종이서류를 보내지 않았다면서 손놓고 있는 게 민주적 절차인가. 아침마다 아이를 통학버스에 태워야 하는 전국의 수많은 엄마는 눈에서 아이가 안 보이는 순간부터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갖고 살게 됐는데 말이다.
법에는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사적 보복을 하지 않도록 국가가 대신 형벌권을 집행하는 의미도 있다. 허나 잠재적 피해자인 국민이 보기엔 턱없이 약한 솜방망이로만 두드리니 하는 소리다.
아니, 내가 잘못 생각했다. 가만 보니 이 나라에서 ‘응분의 처벌’을 기대하는 건 헛된 망상이다. 자기 죄 가리는 데 힘을 써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은 사람이 경찰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국민 안전을 외치고 있으니 뭘 더 기대하겠나.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