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그해 10월 말엔 북한의 무장공비 120여 명이 울진과 삼척에 침투하여 민간인 사상자도 발생하고, 5만여 명의 군 병력이 동원되어 태백산맥의 여러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상의 전쟁 상황이었다. 한 학자의 말대로 “피 흘리는 분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국제정세도 만만찮은 상황이었다. 베트남전은 ‘구정(舊正) 공세’로 격화되었고,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이 한창이었다. 미소(美蘇) 냉전 대결구도는 첨예했고, 중소(中蘇) 갈등도 분쟁으로 비화되고 있었다. 체코 ‘프라하의 봄’은 공산 진영의 균열을 재촉했고, 서구에서는 반전(反戰) 데모가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미국에서는 주한미군 철수가 공공연하게 거론되었다.
당시 통일부의 옛 이름인 국토통일원 개원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통일 문제의 장기적인 해결을 위해 온 국민의 역량을 집결하는 하나의 모체로서 새로운 부처를 신설”했음을 역설했다. 그 역시 통일이 당장 올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고, 또한 통일원이 생겼다 해서 당장 통일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도 않았다. 또한 이 기구는 다른 정부 기구와는 달라서 어떠한 문제가 논의되고 결정이 나왔다고 해서, 당장 내일부터 이것이 실천이나 집행에 옮겨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통일부가 해야 할 일은 종합적으로, 체계적으로 통일에 관한 기본 정책 목표를 수립하고, 자료들을 정리 및 집대성하여 정치, 외교, 군사, 교육, 사회 등 여러 부문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통일 문제에 대한 토론의 광장으로서 넓게 문호를 개방해 국토 통일에 대한 국론의 통일에 힘써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흘렀고, 통일부가 박 전 대통령이 기대했던 역할을 다했는가에 대해서는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최근 통일부를 바라보는 두 가지 경향은 박 전 대통령의 언급에 비춰 볼 때 초점이 다르다.
첫째, 남북 관계가 악화 일로에 있으니 통일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통일부를 폐지하고 ‘남북평화협력관계부’를 만들자는 말도 나온다. 통일부가 남북 관계를 다루는 부처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2005년에 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통일부가 한반도 평화, 경제공동체, 민족동질성, 인도적 지원을 다루는 주무 부처의 임무를 부여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상대가 있고, 그 상대가 호응해 올 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무조건 남북 관계를 개선시키는 것만이 통일부가 할 일은 아니다. 정부의 전략 및 정책노선 속에서, 그리고 국민의 지지가 있을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남북 관계와 북한의 대남 전략을 가장 잘 이해하는 부처로서 어떤 상황에서 남북 관계를 개선시켜야 하는지를 판단해서 건의하는 것도 통일부의 몫이다.
박 전 대통령의 말대로 통일은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과제다. 안보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북한 정권이 사라진다고 해서 바람직한 통일이 저절로 오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안보적 위기 상황 속에서도 통일을 준비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부처가 통일부다. 유일 분단국이기 때문에 세계 유일 부처인 통일부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묵묵히 고생하고 있는 통일부 공무원들이 있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