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는 명퇴가 없소. 나 죽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오.” (1997년 자서전 ‘코미디 위의 인생’에서)
코미디계의 원로이자 영원한 ‘막둥이’인 구봉서(具鳳書) 씨가 27일 은퇴를 고(告)했다. 향년 90세. 유족 측은 구 씨가 폐렴으로 열흘 전쯤 병원에 입원했고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상태가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구 씨는 1945년 악극단의 희극배우로 시작해 배삼룡·서영춘·곽규석 등과 함께 텔레비전 코미디의 기틀을 잡은 1세대 코미디언이다. 400편의 영화와 980여 편의 방송에 출연했으며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등의 유행어로도 인기를 얻었다.
구 씨는 악극 전성기가 끝날 무렵인 1956년 문화성 감독 영화 ‘애정 파도’에 출연하며 활동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그에게 ‘막둥이’란 별명을 안겨준 작품은 코미디언 이종철 김희갑 양훈과 함께 출연한 권영순 감독의 영화 ‘오부자(五父子)’(1958년)다. 이 영화의 인기로 그는 이후 희극영화의 전성시대를 열며 1960년대 중반까지 영화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가 출연한 유현목 감독의 영화 ‘수학여행’(1969)은 국내 영화로서는 최초로 테헤란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구 씨는 생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주인공이 희극배우라는 이유로 당시 문공부에서 B급 판정을 받았다”면서 “수상 후 (불만의 표시로) 문공부 축하 파티에도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에게 구 씨는 MBC ‘웃으면 복이 와요’의 코미디언으로 기억된다. 구 씨는 1969년 8월 프로그램이 시작해 1985년 4월 786회로 종영되는 15년 8개월간 한 회도 빠짐없이 ‘개근’하며 점잖고도 어설픈 캐릭터를 완성했고, 당시 배삼룡 송해 서영춘 박시명 양석천 등과 호흡을 맞췄다.
죽어가는 거지 왕초가 부하들에게 장안의 부잣집 생일, 제삿날, 혼인 날짜를 알려주는 ‘위대한 유산’이나 상민끼리 서로 양반이라고 속이며 혼인을 맺으려고 하는 ‘양반 인사법’ 등의 콩트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정통 코미디 외에도 1963년 동아방송 개국 라디오 프로그램인 ‘안녕하십까? 구봉서입니다’를 진행하며 사회 풍자도 선보였다. 5분간 원맨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코미디는 그냥 웃고 마는 게 아니다.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말초적인 개그는 사람들을 잠깐 웃길 수 있지만 생각하게 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생전 “찰리 채플린처럼 웃음의 이면에 슬픔이 묻어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2009년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기 전까지 “웃음을 주는 직업이 진정 보람되다”며 고 배삼룡과 함께한 ‘그때 그 쑈를 아십니까’(2002년)를 비롯해 무대 활동을 왕성하게 이어갔다. 2013년에는 정부로부터 대중문화예술상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구봉서를 떠올리며, 그래 옛날에 구봉서가 있었지, 그 사람 코미디할 때 좋았어, 지금은 살았나 죽었나, 그래주면 고맙고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과 네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29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