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음 역시 너를 만들고 있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 둬야 할 때가 있어.―‘밤의 피크닉’(온다 리쿠·북폴리오·2005년) 》
무더위가 가시고 바람이 선선해지자 거리와 공원에 ‘산책족(族)’이 부쩍 늘었다. 산책을 즐기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동료나 연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수다를 떠는 이들도 있고, 홀로 외롭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상념에 잠기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이들도 있다.
좁은 사무실에 쪼그리고 앉아 컴퓨터나 서류뭉치와 하루 종일 씨름하는 직장인에게 산책은 ‘정신적 보약’이다. 사무실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나 종로 청계천 주변에는 점심을 거르며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내 증권사에 다니는 한 직장인은 “사무실에서 마음 가는 대로 잡념에 빠지거나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긴 어렵다”며 “산책을 하면 이런 일들을 맘껏 즐길 수 있어 스트레스도 풀고 아이디어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소설 속 10대 소년 소녀들은 야간 보행제에 참석해 1박 2일 동안 걷는다. 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속내를 펼치며 마음속 응어리를 없애 나간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실수를 돌이켜보고, 단점을 직시하며 인간으로서 한 단계 성숙해진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바쁘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나 자신의 결점을 드러내는 일조차 약점으로 여긴다. 이게 심화돼 정신적인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이를 치유하기 위한 첫 단계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늘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은 그럴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점점 더 피폐해진다.
이런 현대인에게 소설의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산책이 해법이 될 수 있다. 낮이든 밤이든 혼자이거나 누군가와 함께이거나 길 위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길을 걷다 보면 팍팍하기만 했던 삶이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