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 (1926~2016)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에 배삼룡 씨와 함께 출연했던 구봉서 씨(왼쪽).
영원한 ‘막둥이’, 한국 코미디의 큰 별 구봉서(具鳳書) 씨가 27일 세상에 은퇴를 고(告)했다. 향년 90세. 유족 측은 구 씨가 폐렴으로 열흘 전쯤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상태가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1945년 악극단 희극배우로 시작해 배삼룡 서영춘 곽규석 등과 함께 텔레비전 코미디의 기틀을 잡은 1세대 코미디언이다. 400여 편의 영화와 980여 편의 방송에 출연했으며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등의 유행어로도 인기를 얻었다. 구 씨는 2009년 목욕탕에서 넘어지며 뇌출혈을 일으켜 뇌수술을 받은 뒤 휠체어 신세를 져왔다.
서민적 웃음과 슬픔, 풍자 넘치는 연기로 한국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렸던 구봉서 씨. 동아일보DB
서민적 웃음과 슬픔, 풍자 넘치는 연기로 한국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렸던 구봉서 씨. 동아일보DB
1926년 11월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세에 ‘태평양 악극단’의 단원이 되며 희극 무대에 데뷔했다. 고인은 1956년 영화 ‘애정 파도’에 출연하며 활동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그에게 ‘막둥이’란 별명을 안겨준 작품은 코미디언 이종철 김희갑 양훈과 출연한 영화 ‘오부자(五父子·1958년)’였다. 이후 희극영화 전성시대를 열며 1960년대 중반까지 배우로 활동했다. 그가 출연한 유현목 감독의 영화 ‘수학여행’(1969년)은 국내 최초로 테헤란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도 받았다. 방송에서 MBC ‘웃으면 복이 와요’는 고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1969년부터 1985년까지 15년 8개월간 한 회도 빠짐없이 개근했다. 고인은 1963년 동아방송 개국 라디오 프로그램인 ‘안녕하십니까? 구봉서입니다’를 진행하며 사회 풍자도 선보였다. 5분간 원맨쇼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그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코미디는 그냥 웃고 마는 게 아니다.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말초적인 개그는 사람들을 잠깐 웃길 수 있지만 생각하게 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찰리 채플린처럼 웃음의 이면에 슬픔이 묻어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고인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고인은 2009년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기 전까지 “웃음을 주는 직업이 진정 보람되다”며 왕성한 무대 활동을 이어갔다. 2002년에는 평생지기 배삼룡과 함께 ‘그때 그 쑈를 아십니까’란 작품도 선보였다.
그는 2010년 2월 배삼룡이 세상을 뜨자 “(같이 활동하던 사람 중) 두 사람밖에 안 남았는데 한 사람이 갔으니 이젠 내 차례인가 싶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13년엔 대중문화예술상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구봉서를 떠올리며 ‘그래 옛날에 구봉서가 있었지. 그 사람 코미디할 때 좋았어. 지금은 살았나 죽었나’ 그래주면 고맙고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