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기리는 ‘기억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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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체결 치욕의 터에 위안부 추모 ‘기억의 터’ 새기다 106년 전 한일 강제병합 조약이 체결됐던 서울 중구 남산공원의 옛 통감관저 터에서 29일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제막식이 열려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왼쪽에서 여섯 번째, 일곱 번째)와 박원순 서울시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조형물을 덮은 현수막을 걷고 있다. 발 밑 검은 동그라미는 일제 만행에 대한 심판을 상징하는 ‘대지의 눈’이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기억의 터는 1022m² 정도로 그리 넓지는 않지만 시민들이 직접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는 의미가 곳곳에 숨어 있다. 공원을 설계한 임옥상 화백(66)과 함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것처럼 조형물에 담긴 상징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벽이 거울처럼 매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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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바위에 앉아 보니 ‘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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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공원 통감관저 터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억의 터’ 제막식이 열렸다.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 참석자들이 ‘세상의 배꼽’ 조형물을 덮은 가림막을 걷어내고 있다. 기억의 터는 국민 1만9755명의 모금으로 조성됐다. 사진공동취재단
#각양각색의 자연석
세상의 배꼽 주변엔 생김새가 다양한 자연석 81개가 흩어져 있다. 강제로 헤어져야 했던 피해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았다. 시민들이 손으로 쓰다듬어 볼 수 있도록 낮은 곳에 배치했다. 이 돌들은 1.5m 높이의 완만한 언덕에 둘러싸여 있다. 돌 위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도시의 건물은 가려지고 온전히 하늘만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뒤집혀 있는 일본인의 이름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 사이엔 대리석 3개가 세워져 있다.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의 동상을 떠받치고 있던 표석(標石)이다. 동상은 광복 직후 파괴됐지만 ‘남작 하야시 곤스케 군상’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이 표석은 2006년 발견됐다. 서울시는 글자가 거꾸로 보이도록 표석을 세워 지난해 ‘거꾸로 세운 동상’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임 화백은 이 조형물을 부각시키지도, 숨기지도 않고 기억의 터에 그대로 남겨뒀다. 임 화백은 “기억의 터 전체에서 보면 ‘소품’에 불과하도록 배치해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제의 만행이 얼마나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추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와 무관하게 11월 구성됐다. 추진위원들이 속한 단체의 성향은 진보와 보수가 섞여 있고, 모금에 참여한 정치인들도 여야 구분 없이 다양하다. 다만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기억의 터로 옮기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추측에 대해 최영희 위원장은 “기억의 터는 소녀상을 감춰두는 골방이 아니다. 소녀상은 그 누구도 옮겨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90)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전쟁 없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