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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살다/장명희]요즘 한옥들, 왜 판박이 모양일까

입력 | 2016-08-30 03:00:00


어느 산촌의 신축 한옥. 대도시의 도심이나 산촌, 섬 어디를 막론하고 같은 형태로 짓고 있다.

얼마 전, 새로 한옥이 들어선 시골마을 몇 곳으로 집 구경을 다녔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농촌이나 산촌에 가면 깊은 오지가 아님에도 골짜기에 드문드문 서너 채의 집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는 곳이 꽤 많다. 한때는 꽤나 그들먹했으나, 경제개발기에 일자리를 찾아 주민들이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비기도 했고, 멀게는 씨족마을이던 곳이 6·25전쟁으로 험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문중이 흩어진 경우도 있다.

최근 이런 곳에 한두 채씩 집이 지어지고 사람이 들어오고 있다. 주로 도시의 은퇴자들이다. 마을에 연고가 있는 이들도 있지만, 단지 심신 편안한 곳에서 텃밭을 가꾸며 은퇴 후를 보낼 곳을 찾아다니다 인연을 맺기도 한다. 대개 주변 도시로부터 차로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며, 한적하고 풍광 좋은 곳이다. 비어있던 마을에 사람이 들어오니 활기도 생기고 인구도 늘게 되어 여러 모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지어지는 집들 중 한옥이 점점 늘고 있다는 소식에 반가워 집 구경에 나선 참이다. 그런데 어느 산촌에서, 동행한 젊은 친구가 불쑥 묻는다. “왜 요즘 짓는 한옥들은 어디나 모양이 같아요?” 대도시의 도심이나 강원도의 산촌, 남도의 섬 어디를 막론하고 거의 같은 형태로 지어지고 있는 것을 두고 갖는 의문이다. 그는 건축과 출신이다. 한옥은 볏짚 구하기 쉬운 농촌에서는 초가집으로, 눈비 많은 곳은 지붕 경사를 가파르게, 추운 지역에서는 외피를 겹으로 둘러싸면서 지붕에 환기 구멍을 내는 식으로 자연환경에 맞추어 집을 지었다고 배웠으리라.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5, 6년 전 진행했던 인터뷰가 생각났다. 농촌 지역에서 한옥지원금을 받아 목구조 기와집을 지은 분이다. 긴 시간 인터뷰 말미에 나온 말은 이랬다. “다시 한옥을 짓는다면 흙집을 짓고 싶다”고. 흙집은 오래 따뜻하고 농작물을 겨우내 보관해도 썩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분에게 “그럼 왜 흙집을 짓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지어야 지원해 주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2000년대 초부터 서울시, 전북 전주시, 전남도는 전통한옥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선도적 역할을 하며 한옥의 신축이나 수선을 위한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한옥 대중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많은 건축비였기 때문이다.

지원 정책은 성과가 있어 한옥 건축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조례를 마련하고 한옥 건축을 지원하는 지자체는 51개에 이른다. 그런데 그 지자체들이 대도시, 농촌, 산촌, 섬을 아우르고 있음에도 그들이 규정하는 지원 대상은 ‘목구조에 한식기와를 사용한 건축물’로 일률적이다.

아무리 환경에 따라 다양한 한옥이 존재했다 해도 지금 전통시대의 집을 그대로 짓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다 해도 지역의 생활 방식에 따라 필요한 시설이 다르며, 산촌과 어촌에 어울리는 디자인이 어찌 같을 것인가.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건축 역시 다양성을 기반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한옥이 한 가지 모습으로 획일화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대중에게 고정된 한옥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옥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은 귀틀집, 초가집, 너와집을 ‘한옥’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해 받아들이고 있으며, ‘목구조 기와집’을 한옥의 보편적인 정의로 이해하는 ‘한옥 전문가’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한옥 진흥 정책 수립과 실행 선상의 그 누구도 한옥이 획일화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한옥이 한국인으로부터 잊혀진 건축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옥 지원 정책의 성과는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원금만 아니었다면 흙집을 짓고 싶었다는 농촌 거주자의 사례는 지원 정책의 역할이 막중함을 알게 한다.

이제 지역과 환경을 고려할 여지를 열어주는 유연하고 섬세한 지원 정책이 필요한 때다. 전통 한옥이 경쟁력 있는 건축으로 진화하기 위하여, 우리 건축문화 발전을 위하여. 다시 정책의 역할을 기대한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