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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 “요즘 뜨는 아재개그… 내 말놀이 적수”

입력 | 2016-08-31 03:00:00

새 시집 ‘유에서 유’ 펴낸 시인 오은




오은 시인은 시집 제목 ‘유에서 유’에 대해 “언어가 있어야 시가, 색이 있어야 미술이, 음이 있어야 음악이 있을 것”이라면서 “예술이란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우리 중 하나는 이제 떨어진다는 거죠? (…) 살다의 반대말은 죽다가 아니야/떨어지다지 (…) 하나만 남았다/나만 남았다//오늘부터 나는 우리라는 말을 쓸 일이 없게 된다’(‘서바이벌’에서)

오은 씨(34)의 새 시집 ‘유에서 유’(문학과지성사)의 반응이 심상찮다. 주문량이 몰리면서 출간 20일 만에 발행부수가 6000부다. 젊은 시인에게 소감을 묻자 “아직 실감이 나진 않는다”며 겸손해했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가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세 번째 시집의 인기는 일찍이 짐작됐다. ‘오은’ 하면 떠오르는 ‘말놀이’가 새 시집에도 오롯이 담겨 있지만 앞선 시들보다 좀 더 성숙해졌다. “시집을 읽은 지인들이 쓸쓸하다고 하더라. 아마도 그 쓸쓸함이 성숙함에 연유한 게 아닐까 싶다”고 그는 말했다. 빅데이터 회사에 다니는 그는 “일과 조직문화에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 자체가 나를 쓸쓸하게 만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빛나는 졸업장은 곧장 서랍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서랍 속에서 나날이 빚이 날 것이다’(‘졸업시즌’) 같은 시구처럼 그의 새 작품들에는 사회적 의미가 강하다. 오 씨는 “앞선 시들도 사회의식이 들어간 게 제법 많은데 그때는 말놀이라는 기법 자체가 주목받기도 했고…그 사이에 한국이 더 살기 어려워진 것도 한몫한 듯싶다”고 말했다. 그는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관찰하는 존재로서의 내가 쓴 시가 많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특유의 ‘말놀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시집 곳곳에서 통통 튀면서 빛난다. ‘너무에 대해, 너무가 갖는 너무함에 대해, 너무가/한쪽 팔을 벌려 나무가 되는 순간에 대해, 너무가 비로소 생장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는 순간에 대해(…)’(‘너무’에서) ‘너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한쪽 팔을 벌리면 ‘나무’라는 단어가 된다고, 그러면 환한 생기로 바뀐다고, 우리가 늘 쓰는 말에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유희가 있다고 시인은 일러준다.

오 씨는 “한때는 말놀이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하고 있더라”라며 “천성 같은 거구나, 끝까지 가보자,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말놀이의 적수를 만났다. 아재개그”라며 쿡 웃었다. 실패한 말놀이는 아재개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찔하단다. “아이의 마음으로 말을 장난감 삼아 자꾸 놀다 보면 지금껏 하지 않았던 말놀이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새 시집을 들고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시인은 그 미지의 말놀이에 이미 가까이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