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된 이즈음, 어느 집이나 다시 숙제전쟁이 시작된다. 엄마는 잔소리를 하고, 아이는 주토피아의 ‘늘보’처럼 속 터지게 움직인다. 느슨한 일상을 살던 아이가 다시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이때는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기상시간부터 일정하게 관리해주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다.
‘숙제 먼저 하고 놀아야 한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사실 숙제를 하는 시점에는 정답이 없다. 아이 말대로 놀고 나서 숙제를 해도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놀고 나서는 숙제를 제대로 안 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가 숙제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립되어 가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즉, 부모의 제안을 강제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좀 더 효율적인 정답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이는 그 정답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부분의 아이는 추상적 사고만으로 정답을 배우기 어렵다. 직접 겪어 봐야 안다. 시간을 넉넉히 두고 기회를 줘야 한다. 만약 아이가 원하는 방식대로 했는데, 약속을 잘 지켜서 숙제를 잘했다면 인정해줘야 한다. 아이는 부모와 다른 사람이다. 일을 해결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는, 특히 저학년 때는 숙제의 질은 좀 따지지 말았으면 한다. 어떤 엄마는 아이 글씨가 예쁘지 않다며 옆에서 지우개를 들고 쓰는 족족 다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는 무기력해진다. 숙제를 훌륭하게 해내지 못했어도 전부 끝냈으면 무조건 “잘했어”라고 칭찬해주어야 한다. 우선 숙제를 빨리 끝내는 것부터 몸에 배게 해야 한다. 숙제를 빨리 끝내기는 하는데 써 놓은 글씨가 엉망이라면 “네가 쭉 훑어봐서 정말 알아보기 힘든 글자 몇 개만 골라 봐”라고 한다. 아이가 고르면 “그래, 그건 좀 고쳐야겠다”라고 말해준다. 이렇게 본인이 찾고 지우고 고치게 해야 자신을 모니터링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건 숙제를 너무 잘해 보내기 위해서 아이를 잡지 말라는 말이다. 담임교사에게 우리 아이가 어떻게 보일지 너무 신경 쓰지 말라. 숙제에 대한 평가는 아이의 몫이다. 부모의 역할은 집에서 숙제를 해가도록 챙기는 것까지다. 아이의 숙제는 부모의 것이 아니라 아이의 것이다. 그 숙제를 어떻게 해갈지는 아이가 결정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 숙제에 너무 집착하면 아이는 그 숙제를 제 손으로 해가면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잃는다. 또한 아이가 갖는 교사나 부모, 공부에 대한 생각까지 그르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