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군 불영사 약수. 생기가 감도는 터에 있는 물은 물맛이 상큼하고 달다.
안영배 전문기자
오경란이 찾아낸 혈은 1059년에 조성된 주희(朱熹)의 고조모 묘로, 금두형(金斗形)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묘의 기운을 받아 성리학의 대가로 추앙받는 주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곳은 한국과 중국의 풍수학인들이 즐겨 찾는 답사지로 유명하다.
물맛을 보고 명당을 찾아내는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널려 있다. 전북 완주의 송광사는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종남산을 지나다가 한 신령스러운 샘물(영천·靈泉)을 마셔 보고는 낙점한 절터다. 지눌은 영천 주위를 돌로 쌓아 메워 둔 후 “후일 반드시 덕이 높은 스님이 도량을 열어 길이 번창하는 터전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조선 광해군 때 이곳에 사찰이 생기고 수천 명의 불도들이 모여들었다고 송광사개창비(전북 유형문화재)는 전한다.
명당의 생기를 받은 물은 그 맛이 달고 부드럽거나, 때로는 기이한 향기가 난다. 반면 지하의 수맥파나 지상의 살기(殺氣)에 노출된 집에서는 물맛이 쓰고, 심한 경우 썩은 내 혹은 비린내 등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풍수서 ‘박산편(博山篇)’은 아예 “(명당) 기운을 알기 위해서는 물맛을 보아야 한다(認氣嘗水)”고 했다. 물은 맛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기도 한다. △상급의 물은 색깔이 푸르고, 맛이 달며, 기운이 향기롭고 △중급의 물은 색깔이 하얗고, 청량한 맛이 나며, 기운이 온화롭고 △하급의 물은 색깔이 담담하고, 매운맛이 나며, 기운이 사납고 △최하급의 물은 물맛이 시거나 떫고, 음식이 쉰 듯 시척지근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명당 터와 물맛의 연계 고리를 확인해 보기 위해 필자는 오랜 기간 관찰해 왔다. 생기(生氣)가 감도는 명당 집에 살고 있는 10여 가구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면담을 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반응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가구주가 “물맛이 좋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기 수원의 아파트에 사는 정모 씨(42)는 “수돗물을 정수기로 거른 물을 마시는데 시원하고 향기로운 맛이 난다”면서 “다른 집의 정수기 물을 마셔 보면 우리 집 물맛 같지가 않다”고 했다. 인천의 단독주택에 사는 김모 씨(52)는 “끓인 수돗물을 차게 해 마시는데도 물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이모 씨(55)는 “예전에 살던 집과 새로 이사 온 집에서 모두 생수를 사 마시고 있는데, 똑같은 생수 제품인데도 예전 집에서보다 지금 물맛이 더 좋다”고 평했다.
명당 터의 물맛이 다르다는 것은 매우 감각적인 표현이다. 이걸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江本勝) 박사가 공명자장분석기(파동측정기)를 이용해 물의 결정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환경과 터에 따라 물의 결정이 달리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도 여러 약수터 물과 수돗물 등 물 결정 사진을 촬영했는데, 아름다운 육각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 곳과 결정 자체를 이루지 못한 곳을 선명하게 구분해 보여줬다. 그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물은 사람의 말과 마음, 음악, 환경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물질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연구를 풍수적으로 풀어보면 ‘물은 명당을 알고 있다’고나 할까.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