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 릴롱궤 외곽 빈민지역에 세운 ‘기아 그린라이트 스쿨(KGLS)’. 기아차 자원봉사단이 학교 개보수 작업을 돕고 있다.
우기에 무너진 KGLS 학생들의 집 개보수 작업에 나선 기아차 자원봉사단.
자원봉사단원들이 이동클리닉 센터에서 아이들 몸무게를 잰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다 헤진 옷을 입고 흙먼지 속에 방치된 아이들.
이동클리닉을 찾는 환자 대부분 말라리아나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이다.
살리마 이동클리닉 센터에서 아이들을 진료하는 이미숙 센터장.
졸업식에 참석한 KGLS 졸업생 및 재학생과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들.
“Rock, Scissors, Paper(바위, 가위, 보)! Winner stand up(이긴 사람은 서 있고), Loser sit down(진 사람은 자리에 앉는 겁니다). Everybody OK(다들 이해했죠)? 자, Rock Scissors Paper(바위 가위 보)! Who wins, who loses(누가 이기고, 누가 졌지)? 와~하하하….”
아프리카 말라위 수도 릴롱궤 외곽 빈민촌. ‘기아 그린라이트 스쿨(KIA Green Light School·KGLS)’ 교실이 웃음소리로 떠들썩하다. 한국에서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의 서툰 영어를 따라 학생들끼리 가위바위보 게임에 한창이다. 이긴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니 학생들 눈에서 불꽃이 튄다.
KGLS는 기아자동차가 2013년 국제 비정부기구(NGO) ‘기아대책’과 함께 설립한 4년제 중등교육기관이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한다. 이듬해 문을 연 이 학교 학생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학년별로 40명씩 모두 160명. 대부분 주변 빈민촌 아이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 헤진 옷을 입고 맨발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학교 주변을 기웃거리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기아대책을 통해 연결된 후원자들 덕분에 말끔한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닌다.
“It a magic~!”
다른 교실에선 마술쇼가 펼쳐지고, 또 다른 교실 학생들은 ‘몸으로 말해요’ 게임에 온통 빠졌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어색해하던 자원봉사자들과 학생들은 그렇게 함께 웃고 떠들며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가져간 탈과 모자, 티셔츠, 태양광 모형자동차를 만드는 법과 카메라 사용법 등을 가르치고, 올해 첫 졸업생들과는 며칠 후 졸업식장에서 부를 합창 연습을 함께 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25명 자원봉사자
학교 개보수 등 다양한 봉사활동
학생들을 위해 자원봉사에 나선 이들은 기아차 임직원들.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독일, 슬로바키아 등 해외 법인 직원까지 포함해 모두 25명이 황금 같은 여름휴가까지 반납하고 참여했다. 지원자가 많아 국내 경쟁률은 3.8대 1, 해외 법인에선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참여한 직원도 있다.
자원봉사단은 7월 31일 말라위에 도착해 8월 1일부터 4일까지 나흘간 교육봉사와 재능기부 이외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학교 캠퍼스 조경 및 정비작업도 돕고, 무너진 학생들 집을 찾아 페인트를 칠하고 흙벽돌을 으깨 집안 바닥을 다지는 등 개보수 작업에도 나섰다. 이번 봉사단의 도움을 받은 학생은 4명. 재학생 중 가족 전체 월수입이 40달러도 안 되는 저소득층에서 선별됐다.
봉사단이 목격한 학교 주변 빈민촌의 모습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기저기 지붕이 무너지고 벽이 허물어진 집이 즐비했다. 자재를 살 돈이 없어 흙으로 벽을 쌓고 짚으로 지붕을 삼다보니 지난 우기 때 집중 폭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주변엔 쓰레기 더미가 나뒹굴고 웅덩이에선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차마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상상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KGLS 4학년 졸업반에 재학 중인 티야미케 잔도나 군(19)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봉사단의 도움으로 짚 대신 양철지붕이 올려지고, 건물 벽도 새로 쌓아 흰색 페인트로 깨끗하게 칠해졌다. 자동차 엔지니어가 꿈이라는 잔도나 군은 “너무 감사하다”면서 “주변의 더 많은 친구가 이런 혜택을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그린 라이트 프로젝트’
한계 직면한 지역주민 자립과 성장 일조
기아차가 아프리카에서 사회공헌(CSR)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기아차가 국민의 성원과 국가의 지원으로 부활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은혜를 사회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사회공헌을 하게 됐다”는 게 노계환 기아차 CSR경영팀 차장의 설명이다. ‘그린 라이트 프로젝트(Green Light Project·GLP)’라는 사회공헌 사업명은 임직원이 함께 모여 지은 이름이다. 한계에 직면한 어려운 지역 주민들의 자립과 성장을 도와 그들 삶의 ‘빨간불’을 ‘녹색불’로 바꿔준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렇다면 왜 굳이 아프리카일까? “‘순수한’ 사회공헌 활동을 위해서”라는 게 노 차장의 부연 설명. 일반적으로 기업 사회공헌 활동은 마케팅과 연계된 경우가 많다. 기아차는 이런 의심을 피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도 기아차 판매망이 없는 가난한 나라들을 택했다.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에 위치한 말라위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2016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전 세계 197개국 중 151위(53억4700만 달러)에 그쳤다. 우리나라 GDP(1조3212억 원)와 비교하면 2.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HIV) 감염률은 14%에 달한다. 인구 1700여만 명 중 240만 명 정도가 에이즈 감염자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말라리아와 폐렴 등으로 인한 영·유아 사망률은 8%에 육박한다.
기아차는 이들을 돕기 위해 2012년 보건의료 환경이 가장 열악한 살리마 지역에 클리닉센터를 세우고, 구급차 1대와 이동도서관 및 이동영상관용 탑차 2대를 지원했다. 센터 건립비용을 포함해 2017년까지 운영관리 예산으로 기아차가 지원하는 예산은 모두 10억 원. 이어 이듬해인 2013년 추가로 10억 원을 더 지원하기로 하고 릴롱궤에 5개년 계획으로 KGLS를 설립한 것이다. 운영 및 관리는 모두 기아대책이 맡았다.
기아차는 또 지난해 홍수 피해를 입은 말라위 남부지역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4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제백신연구소와 함께 백신 10만 도스를 긴급 지원했다. 강원화(43) 기아대책 말라위 지부장은 기아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사회공헌사업을 펼치는 기업 대부분 출구전략을 세우지 않는다. 건물을 짓거나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기아차는 5년 동안 꾸준히 지원하면서 출구전략까지 함께 고민한다. KGLS의 경우 인근 땅을 매입해 콩과 옥수수 등 농사를 짓고, 방앗간과 제빵시설까지 갖춰 100% 재정자립을 이루면 현지인들에게 단계적으로 경영권을 넘길 계획이다.”
우기 때 ‘말라리아’ 창궐…환자 대부분 아동
엄마들 수유로 영·유아 ‘에이즈’ 감염
봉사활동 사흘째, 봉사단은 살리마로 향했다. 릴롱궤에서 2시간 정도 거리. 소도시인 이곳엔 ‘자전거 택시’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우기마다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에이즈 감염자가 넘쳐나지만 택시비가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
이미숙(57) 살리마 클리닉센터장은 한국인 기아대책 봉사단 1명과 함께 이곳에 거주하면서 현지인 직원 2명을 고용해 봉사활동을 펼친다. 1주일 중 3일은 클리닉센터에서 진료를 하고, 2일은 직접 구급차를 몰고 의료시설과 거리가 먼 오지로 직접 찾아다닌다.
환자의 70~80%가 말라리아 환자다.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에이즈 감염 영유아들. 에이즈에 감염된 엄마의 수유를 통해 전염되는 사례가 많다. 이동도서관과 이동영상관을 함께 운영하는 이유가 보건의료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이 필요해서다.
“에이즈에 걸린 엄마들에게 수유를 못하도록 분유를 지원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당장 먹고 살게 없으니까 분유를 나눠 먹이고, 갓 태어난 아이에겐 모유를 먹이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족 전체가 에이즈 환자가 되고 마는, 안타까운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센터장은 이 같은 현실을 설명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봉사단은 이 센터장의 안내를 받아 이동클리닉과 이동도서관, 이동영상관 등 3팀으로 나뉘어 봉사활동에 나섰다. 도로 사정은 최악이었다. 온통 비포장도로인데다 우기에 깊게 파인 웅덩이가 곳곳에 지뢰처럼 도사렸다. 잔뜩 마른 흙먼지는 차량이 지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피어났다.
어렵사리 현지에 도착한 봉사단은 말라리아에 걸려 이동클리닉센터에 찾아온 아이들의 몸무게를 재고 구호품을 나눠주는가 하면, 흙먼지 속에 방치된 아이들에게 책과 영상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꿈을 심어줬다.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근무하는 신혜조 씨는 “아픈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봉사활동을 위해 이곳에 왔지만 과연 내가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모두가 “오 해피데이” 합창
향후 남미 등으로 봉사 확대 예정
자원봉사 마지막 날, KGLS 첫 졸업식이 열렸다. 다이통 만사라(Dyton Mansala) 졸업생 대표는 “교육을 통해 나눔의 정신을 갖도록 도와주고, 의료지원과 주거환경 개선 등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을 준 기아차의 박애정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는 졸업생과 봉사단이 함께 준비한 합창.
“오 해피데이~ 오 해피데이~ 싸우고 기도하고 모두 함께 기뻐하며 살자, 매일매일. 오 해피데이~ 해피데이!”
노래는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졸업생들의 소박한 희망을 담아 학교 담장 밖으로 울려 퍼졌다. 기아차는 현재 말라위 외에도 탄자니아와 모잠비크,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등 아프리카 6개국 9개 지역에서 ‘그린라이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향후 남미 등지로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릴롱궤·살리마=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엄상현 기자 ·기아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