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용료 내라” 6곳 입항거부… 컨테이너 54만개 운송 차질

입력 | 2016-09-01 03:00:00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선박 가압류 등 후폭풍 현실로




싱가포르서 가압류 된 한진로마호 싱가포르 법원이 지난달 30일 용선료 체불로 가압류한 한진해운 선박 ‘한진로마호’가 싱가포르 항구에 정박해 있다. 사진 출처 마린트래픽

한진해운이 31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운데 이를 전후해 국내외에서 한진해운의 운항 차질이 빚어지면서 우려했던 물류 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가압류 및 입항 거부 등이 이어졌다. 정부는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보전하기 위한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해운업계와 부산 지역 경제단체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더라도 청산만은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세계 곳곳에서 운항 차질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부터 한진해운 채권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재빨리 행동에 나섰다. 돈을 받기 위해 한진해운 선박을 잡아두거나 입항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독일 선주사 리크머스는 한진해운으로부터 밀린 용선료를 받기 위해 지난달 30일 싱가포르 법원에 가압류를 신청해 한진해운 소유의 5308TEU(1TEU는 약 6m 길이의 컨테이너 1개분)급 ‘한진로마호’를 이날부터 싱가포르항에 억류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선주사인 싱가포르 PIL은 한진해운에 빌려준 선박 ‘한진멕시코호’를 돌려받기 위해 운항 정지를 요청했다. 컨테이너 1만 개의 발이 묶인 셈이다.

싱가포르 중국 스페인 미국 캐나다 등지의 6개 항만은 한진해운 선박의 입항을 금지했다. 한진해운 측이 항만 이용료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먼저 돈을 내야 항만을 이용할 수 있다”고 통보한 것이다. 문제는 한진해운 선박에 실려 운송 중인 컨테이너 54만 TEU가 언제든지 이런 위험에 노출돼 발이 묶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한진해운이 속한 해운동맹인 CKYHE 얼라이언스의 회원사들도 한진해운 선박에 화물을 싣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진해운 선박의 적재공간을 할당받아 화물 운송을 주선하는 ‘포워더(forwarder·운송주선인)’들은 한진해운을 대신할 외국계 선사의 적재공간을 확보하느라 분주했다. 연근해 운송을 담당하는 포워더 업체 관계자는 “한진해운 선박에 실으려던 화물을 다 빼고 있다”며 “이미 떠난 선박의 경우 도착할 때까지 억류 등의 문제가 없는지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재공간을 확보하려는 화주가 늘면서 해운 운임도 가파르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미주항로 운임이 27.3%, 유럽항로 운임은 47.2% 상승하고 운임 상승으로 국내 화주들이 추가로 부담할 비용을 연간 4407억 원으로 추산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미주 운임은 30∼40%, 유럽 운임은 2배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이날 ‘해운·항만 대응반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한진해운 사태에 대한 대책을 내놨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만큼 채권자들은 한진해운이 운송 중인 컨테이너를 강제로 내릴 수 있다. 이에 따라 해수부는 한진해운 관련 컨테이너에 있는 물건을 최종 목적지까지 실어줄 다른 선박을 구하는 방법을 화물주에게 안내하기로 했다.

한진해운 노선이 사라질 것에 대한 대책도 내놨다. 해수부는 한진해운 단독 운항 노선 중 미주 1개 노선에 4척, 유럽 1개 노선에 9척 등 모두 13척의 현대상선 선박을 투입한다. 한중과 한일, 동남아 항로 등에도 근처에 있는 국내 선박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 CKYHE에도 노선 재배치를 요청했다.


○ 전문가들 “해운시장 지켜야”

해운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시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양창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은 “대만 선사 양밍(陽明)의 경우 가오슝(高雄) 터미널이 투자하고 있는데, 채권단이 지원할 수 없다면 부산항만공사라도 나서서 돈을 지원하는 방안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삼성과 LG 등 대형 화주들을 상대로 설득해 외국 선사에 뺏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한종길 성결대 유통물류학부 교수는 “법정관리에 들어가긴 했지만 청산만은 막아야 한다”며 “국적 선사가 국내 조선소에 발주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따로 활동했던 해운 관련 업계가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교수는 “일본처럼 해운 화주 조선 국책은행 등 관련 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해사클러스터 펀드를 조성해 한진해운을 지원한다면 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실제로 일본에서는 2015년 9월 파산한 5위 선사 다이이치주오기센(第一中央汽船)을 지역 해사클러스터가 지원해 살린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이날 한진해운 내부망에 글을 올려 “한진그룹은 단 한순간도 한진해운의 회생을 위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며 “그룹 차원에서 회사와 해운산업 재활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오후 부산항발전협의회와 해운항만 관련 단체에서 모인 1500여 명은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한진해운 살리기 범시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원양노선 하나를 구축하는 데 1조5000억 원이 드는데 한진해운의 퇴출은 수십조 원의 국가 네트워크 자산이 사라지는 셈”이라며 “우리의 생명줄인 한진해운을 살려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발표했다. 서병수 부산시장도 입장발표를 통해 지역경제에 미칠 파장과 해운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한진해운 회생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성규 sunggyu@donga.com·박은서·이호재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