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뒤에서 열심히 박수를 쳤지만 김용진 부총리(오른쪽)는 총살을 면치 못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8월 5일 새벽 북한의 고위 소식통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7월 25일 김용진의 처형이 진행된 뒤 11일 뒤였다. 이 소식통은 북한 고위 간부의 얼굴만 보고도 직책과 이름을 식별해 낼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듣고 보니 김 부총리의 처형 이유는 지난해 4월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에서 꾸벅꾸벅 졸았다고 총살된 것으로 알려진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과 별로 다르지 않다. 현직 부총리가 김정은이 연설할 동안 안경을 닦았다는 이유로 총살됐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수 있는 뉴스였다.
김용진은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매달 평균 7회 이상 동정이 포착되던 인사였다. 각종 중요 행사가 몰려 있는 8월 말까지 등장하지 않으면 김용진의 신상에 변고가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뜻이다.
북한에서 행사가 열릴 때마다 관계 부처에 김용진 부총리가 나타났는지를 확인했지만 그는 8월 말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첫 제보를 받고 26일이 지난 31일 정부는 김용진 부총리가 자세 불량을 지적받은 것이 발단이 돼 처형됐으며 최휘 제1부부장도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김용진이 보위부 조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 반당반혁명분자 그리고 현대판 종파분자로 낙인찍혀서 7월 중에 총살 집행됐다”고 설명했다. 분명 소식통은 김용진이 러시아 유학생 출신이란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용진의 경력을 보면 김일성종합대 부총장을 지냈고, 2003년 교육상에 올랐다. 이후 쭉 같은 직책에 있다가 김정은 체제 출범과 동시에 2012년 1월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로 승진했다. 뇌물이 오가는 자리와 어느 정도 거리가 먼 교육 관료의 경력은 북한에서 다른 간부와 비교하면 비교적 깨끗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눈에 찍히자마자 바로 무시무시한 정치범으로 둔갑했다. 김용진 처형이 보여주는 섬뜩함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다. 김정은이 살생부에 올린 이상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더라도 도무지 살아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최근 잇따른 북한 외교관들의 탈북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관심사는 잠깐 해외로 옮겨갔다. 북한 내부에서 어떤 상식 밖의 사건들이 벌어지는지는 그동안 많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용진 처형에서 나타났듯이 김정은은 달라진 것이 없다. 작년엔 한국으로 치면 국방장관을 죽이고, 올해는 부총리를 죽이고…. 21세기판 연산군은 여전히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쯤 되면 다음 차례는 누가 될지 간부들 모두가 공포에 질려 떨고 있을 터이다.
북한 외교관들이 잇따라 망명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듣고 있으면서 도망칠 기회가 있는 그들은 단순히 죽고 싶지 않아 북한을 등지는 셈이다.
김정은은 사석에서 믿고 일을 맡길 충신이 없다는 푸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에 안 든다고 측근을 죽이는 보스 밑에 있다면…. 아마 김정은부터 제일 먼저 도망쳤을지 모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