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먼저 전셋집을 알아봤다. 서울 평균 전세금이 3억 원을 훌쩍 넘겼다는 통계가 있었는데, 실제 다녀보니 실로 놀라웠다. 1억, 2억 원은 우스웠다. 그렇다고 보증금이 저렴한 월세를 구하자니 매달 나가야 하는 비용이 상당했다. 월급도 얼마 되지 않는데 이 돈이 매달 나간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서울 밖으로 나가자니 출퇴근이 너무 길어져 한 사람은 직장을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이런 쪽에 해박한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다. “대출받으면 돼. 요즘 이자가 얼마나 싼데. 1억 빌려도 얼마 안 나와. 월세보다 훨씬 낫다니까.” 은행에 가보았다. “빚도 자산이죠. 요즘 주담대(주택담보대출)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저금리가 기회라며 권한다. 은행 다니는 친한 누나는 “우리 또래에 자기 돈으로 집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다 부모가 해주는 거지. 그런 금수저가 아니면 대출받아야지”라고 말했다. 내 월급으로 수십 년을 갚아야 하는 돈임에도 대출이 척척 나온다고 한다. 실제 대출이 주거비용으로 가장 저렴하다. 그렇게 빚을 권하는 사회다.
얼마 전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가 오피스텔 123채를 가지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내 또래 친구들이 모인 ‘카톡방’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거 봐, 부동산 계속 간다니까. 고위층에서 이렇게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데 쉽게 무너뜨리겠어? 어떻게든 계속 띄울 거야.” “우리도 각자 빚내서 돈 모아 오피스텔 사자. 젊을 때 조물주 위에 건물주 한번 해봐야지.”
빚 권하는 사회, 빚으로 쌓아 올린 집, 부동산 불패 신화, 우리 정권에서만 터지지 않으면 된다며 폭탄 돌리는 정부, 이런 부동산에 대한민국의 민낯이 있었다.
우리 세대에게 집값은 한없이 치솟은 성벽처럼 공고하다. 특히 부모님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시작해야 하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빚으로 점철되는 사회생활 시작은 너무나 가혹한 짐이다. “대출받으면 돼”라는 말조차 너무 아프다. 얼마 전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면 한 푼도 안 쓰고 숨만 쉬며 모아도 13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있었다. 1996년 같은 통계에서는 6년이었다고 한다. 20년이 지나도록 월급은 찔끔 오르고 집값만 내리 오른 것이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무렵 30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시대를 맞게 된다. 그렇다고 부동산 버블이 터져도 문제다. 외환위기 때처럼 수많은 가정이 붕괴되면 가장 고통받는 것도 결국 아이들이다. 부모님 세대의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불안해진 노후를 우리 세대가 빚을 내가며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우리의 부동산을 떠받치기 위해 얼마나 더 가혹한 방식으로 살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서둘러 이 탐욕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