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진 시각예술큐레이터
이런 현실의 배경에는 체계적이지 못한 시스템, 미술의 가치와 시장 가치 간 균형을 상실한 구조, 멀리 보지 못한 채 당장의 이익에만 충실한 미술생태계 등이 놓여 있다. 물론 세계 시장의 흐름을 수용하거나 그에 대응하지 못하는 협소함도 미술 한류의 침체에 한몫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미술계는 미래로 확장된 실험적인 작업에 대한 독려보다는 대중 취향에 편승하는 경향이 강하다. 잠재력이 뛰어난 국내 작가를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시키는 교두보도 그리 많지 않다. 즉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예술 거점이 공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라는 것인데, 이는 두어 개의 옥션 회사와 10개 안팎의 갤러리가 국내 미술시장의 약 90%를 장악하고 있는 실정만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이란 그저 소비되고 휘발되는 고급 소모품일 뿐 깊은 잔상을 남기는 역사가 되진 못한다. 특히 우수한 미술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는 협소한 무대, 실현성과 동떨어진 인문학적 수사만으로 미술한류를 고대한다는 건 그저 막연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순환한다면 미술한류도 실현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그 순환의 틈에서 동서양 구분 없이 인종 성별 연령을 아우를 수 있는 공통의 미술언어를 찾아내려 한다면 한국미술은 세계가 우러러보는 또 하나의 바람이 될 것이다. 그것이 ‘미술한류’다.
최유진 시각예술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