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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미 기자의 야구찜]“결과보다 과정” 염경엽의 선수 육성법

입력 | 2016-09-02 03:00:00

신인투수 잘하건 못하건 선발 투입… 투수 신재영 10승 이후 흔들려도
“변화 시도 계속하라” 긍정적 평가
타격 부진 김하성에겐 “루틴 지켜라”… 라인업서 빼거나 2군으로 안 보내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미국 뉴욕 셰이퍼 음악학교 최고의 스튜디오 밴드를 이끄는 플레처 교수는 연습 중 잘못된 음정을 하나 듣고 미간을 찌푸린다. 손들고 자수하는 학생이 나오지 않자 플레처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네가 틀렸나?”라고 추궁을 한다. 이윽고 한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플레처는 육두문자를 던진다. 학생이 울면서 교실을 떠나자 플레처는 음정을 틀린 범인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자기가 틀렸는지 맞았는지도 모르는 게 더 큰 죄야.”

올 시즌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난 뒤 새로운 주력 선수들을 키워내고 있는 넥센 염경엽 감독(사진) 역시 눈앞의 승리보다는 긴 호흡을 갖고 실력을 키우는 것을 강조한다. 2015년 입단한 신예 투수 박주현(20)과 최원태(19)를 계속 선발 등판시키고 있는 염 감독은 “두 선수를 내보낸 경기는 승패를 떠나 초연하게 본다”고 말했다.

임보미 기자

염 감독은 “좋았던 게임과 나빴던 게임이 왜 차이가 생기는지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둘에게는 큰 발전이다. 결과가 안 좋았던 경기를 보면 초구 스트라이크를 못 잡아 카운트가 몰렸다. 좋았을 땐 늘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으며 공격적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신재영도 실망의 대상이다. 신재영은 각이 큰 슬라이더를 앞세워 다른 변화구를 거의 쓰지 않고도 6월 말까지 10승을 거뒀다. 6월 16일 롯데전에서는 직구와 슬라이더로만 107개의 공을 던져 6이닝 2실점 승리를 따냈다. 10승을 수확할 때까지 기록한 퀄리티 스타트(선발투수가 6회까지 실점을 3점 이하로 허용)만 9번이다. 하지만 10승 고지를 밟은 바로 다음 경기부터 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후반기 신재영’에 대한 염 감독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신재영이 꾸준히 투구 내용에 변화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염 감독은 상대 타자들에게 구질이 노출되면서 투구에 어려움을 겪게 된 신재영에게 체인지업 구사율을 높이라고 주문했다. 아직 신재영은 체인지업을 슬라이더만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한다. 연습 때는 “기가 막히게 떨어진다”고 코칭스태프의 극찬을 받지만 실전에서는 연습 때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맞더라도 계속 던져야 한다는 게 염 감독의 지론이다. 눈앞의 1승보다 중요한 건 내년에도 10승을 거둘 수 있는 투수 신재영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8월 한달 1할대 타율로 부진에 빠졌던 김하성을 보는 염 감독의 시선도 같다. 염 감독은 “맞든 안 맞든 루틴을 지키라”고만 할 뿐 김하성을 한 번도 2군으로 내려보내지 않았다. 염 감독은 “설령 2할 5푼으로 시즌을 마치더라도 내가 왜 2할 5푼으로 마쳤는지를 알면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며 “올해 20-20이나 골든글러브를 못 해도 좋다. 지금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 나중에는 그럴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성공을 위해 필요한 건 꿈만 가득한 욕심이 아닌 꿈을 이룰 계획”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수년간 리그를 지배할 왕조의 구축을 꿈꾸는 염 감독에게 안전하게 얻은 1승보다 큰 그림 속에 떠안은 1패가 더 가치 있는 이유다. 올 시즌 3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넥센의 성적표는 ‘과정에 집중하면 결과는 따라온다’는 식상한 진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