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괄호 속의 숫자놀이처럼
노을도 생각이 많아 오래 머물고
하릴없이 도랑 막고 물장구치던 아이들
집 찾아 돌아가길 기다려 등불은 켜진다
9월도 저녁이면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푸른 산그늘 골똘히 머금는 마을
빈집의 돌담은 제 풀에 귀가 빠지고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살갗의 얼룩 지우며
저무는 일 하나로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밥상 물리고 이부자리를 편다
9월도 저녁이면 삶이란 죽음이란
애매한 그리움이란
손바닥에 하나 더 새겨지는 손금 같은 것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며칠 전 같은 날,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가을’임을 깨달았다. 바람, 서늘한 바람 때문이었다. 예고도 없이 하늘은 높아지고 공기는 차가워졌다. 그 순간 모든 우리는 서로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그러한 것처럼, 함께 사는 누군가에게 가을이 찾아왔음을 느꼈던 것이다.
느닷없이 시작된 가을에 이 시만큼 어울리는 시도 없다. 가을은 강연호 시인의 작품들을 읽기 좋은 계절이고 그중에서 이 시는 9월의 첫 주에 가장 읽기 좋은 작품이다.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시인이 아니어서 그의 시는 차근차근 따라가면 차곡차곡 읽힌다.
삶은 매일이 전쟁 같지만 지나고 보면 매미 껍질처럼 가볍고 안쓰럽다. 시인의 마음도 그러했는가 보다. 지난여름을 정리하며 9월은 글썽거리고 있다. 그렇게 마음도 생각도 깊어지라고 찾아온, 열심히 깊어지고 있는 가을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