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논설위원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북한을 지원하는 중국의 이중적 처신은 불신을 불러일으킨다. 사드 배치에 대해 ‘소국인 한국이 어찌 대국의 뜻을 거스르려 하느냐’는 식의 국가 간 갑질 행태를 접하고 보니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더 이상 믿음이 가지 않는다. 베이징의 기류 변화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아마도 강경 대응 입장에서 일보 후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중 정상회담에서의 태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시 주석이 내건 주변국 외교 전략은 ‘친밀(親)·성실(誠)·혜택(惠)·포용(容)’이었다. 거창한 수사와는 달리 실제로는 ‘힘의 외교’로 주변 거의 모든 나라와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과 함께 아시아 3대 강국인 일본과 인도는 중국을 등지고 미국과 손잡은 지 오래다. 시 주석의 국가전략 일대일로(一帶一路·신실크로드)상에서 핵심 길목이라 할 수 있는 인도의 친미(親美)와 군비 팽창은 중국으로서는 거대한 걸림돌이다.
베트남도 지난해 6월부터 주요 항구에 미국 인도 군함들이 정박할 수 있게 했으며 미 해군 탐사선의 다낭 항 탐사 활동도 허용했다. 미국, 베트남 군인과 해양경찰은 정례적으로 훈련과 작전을 같이 하기로 했다. 1993년 미군기지를 철수시켰던 필리핀은 올 1월 8개 군사기지를 미군이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지금 한반도와 동남아시아는 ‘일대일로’를 내세우며 팽창하는 중국과 ‘리밸런싱(Rebalancing·재균형)’을 내걸고 중국을 주변국들로부터 고립시키려는 미국이 격돌하는 전선(戰線)이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한미일 동맹 강화는 당연하고 중국에서 일본으로 균형추를 더 이동시켜야 한다. 일본은 우리와 똑같이 북핵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있다. 대잠수함 탐지와 방어 능력도 우수하고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첨단 전투기 등 공군력도 강하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정보자산도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내년 방위비로 56조 원을 책정했다. 외교 안보적으로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화할 때다.
총수출액의 25%나 되는 대중 수출 비중도 낮춰 가면서 인도 베트남은 물론이고 시베리아 개발 등 ‘신동방정책’을 펼치는 러시아와 극동에서의 협력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도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나 원자력잠수함 등 우리 안보 현안을 관철시킬 수 있는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1년 남짓 남은 현 정부는 외교 안보에 더 에너지를 집중했으면 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