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15주년…종잡을 수 없는 수법에 세계 경악 배낭폭탄 이어 트럭까지 무기로…교회-공연장 등 공격장소도 안가려 종교적 이유-이데올로기 넘어 최근엔 불만을 테러로 표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던 9·11테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세계는 끊임없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 왔지만 테러의 형태와 전술은 진화하고 있다. 테러가 일상화됐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9·11테러 15주년(9월 11일)을 앞둔 지난달 28일 뉴욕 9·11메모리얼의 동판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 옆에 작은 성조기가 꽂혀 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9일 후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된 연방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에서 처음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전 세계는 미국 편에 설 것이냐, 테러리스트의 편에 설 것이냐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딕 체니 부통령은 미국의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결과는 부시 대통령의 자신감이 아닌 체니 부통령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9·11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은 사살됐고, 악의 국가로 지목됐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도 미국은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올 7월 프랑스 니스 테러 후 “15년 동안 전 세계 지도자들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해 왔다”며 “그런데 왜 전쟁이 승리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없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오히려 프랑스 마뉘엘 발스 총리의 말이 더 와 닿는다.
“시대는 변했고 프랑스는 테러와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중동을 넘어 확산되는 테러와의 전쟁
9·11테러 후 부시 행정부 8년간(2001∼2008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중동에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전쟁의 장기화는 서방의 피로감으로 확산됐다. 때마침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은 동력을 급격히 잃게 됐다.
9·11테러로 촉발된 이라크전 종전을 주요 외교 공약 중 하나로 내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중동 지역에서 군사력을 줄였다. 이라크에선 최소 질서 유지를 위한 요원을 남겨둔 채 철군했다.
이러자 부시 행정부 8년간 미군이 중동에서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에 숨죽였던 이슬람 과격 세력은 미군이 떠나간 자리에서 ‘제2의 알카에다’를 꿈꾸며 세력을 키웠다. 그것이 바로 현재까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의 가장 큰 외교적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다.
이들은 2014년 6월 ‘칼리프 국가’ 제국 설립을 선언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오바마 대통령이 IS의 사실상 설립자”라는 과격한 주장은 차치하고라도 미군이 없는 정치 군사적 진공 상태가 IS라는 또 다른 과격 테러 세력이 똬리를 틀게 한 배경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2014년 미국은 같은 전략으로 IS 공습을 시작했다. 시리아에서 시작해 팔루자 모술 등 이라크까지 확장됐던 IS의 영토는 미국과 유럽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전 세계에서 IS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IS는 온라인 기반의 정보 확산 능력, 유전(油田) 운영을 통한 자체 경제력 배양 등을 토대로 기존 테러 세력과는 전혀 다른 테러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NBC 방송이 지난달 확보한 백악관 문서에 따르면 IS는 중동을 넘어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세력을 넓히며 글로벌 테러 그룹으로 진화하고 있다. 2014년 미국의 첫 공습 때 7개 국가에 뻗쳐 있던 IS의 활동 반경이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말리 튀니지를 넘어 아시아의 방글라데시 필리핀 인도네시아까지 확산되고 있다.
극단주의 이슬람 사상에 경도돼 사지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보안컨설팅 업체인 수판그룹의 연구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IS에 합류하기 위해 시리아와 이라크로 간 사람은 전 세계 81개국에서 1만2000명에 이른다. 그중에는 프랑스인 1700명, 벨기에인 500명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이미 전 세계로 퍼져 곳곳에서 테러를 기획하고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란 해리 사르포는 최근 시리아에서 지하디스트와 3개월 동안 함께 지냈다. 그는 시리아에서 나온 뒤 NYT에 “현지 테러리스트들은 유럽인들에게 시리아로 오지 말고 유럽에서 새로운 테러 바람을 일으키라고 권유했다”고 전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테러의 일상화
지난 15년 동안 테러의 형태는 진화했고 그에 대한 대응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NYT는 테러 전술이 점점 더 원초적으로 변화하고 테러 그룹은 더욱 분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테러 대처의 핵심인 정보와 보안 체계로 이들을 막는 것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이라크 반군은 미국 정규군과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자 특정한 목적 없이 이라크 시민이 모인 어느 곳에서든 테러를 벌이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소프트 타깃’ 테러다. 공격 대상이 불특정 다수로 확산된 것이다. 본격적인 소프트 타깃 테러의 첫 번째는 2006년 파키스탄인 무장 세력이 인도 뭄바이에서 166명을 죽인 사건이다.
이후 테러 그룹과 직접 연계되거나 훈련을 받지도 않은 자생적 테러리스트, 이른바 ‘외로운 늑대’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범행을 감행할 때까지 그들의 의도나 계획은 전혀 알아차릴 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테러 수법은 진화하고 있는데 대응은 여전히 길을 막는 바리케이드와 금속탐지기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여름 프랑스의 니스 트럭 테러, 독일의 뮌헨 총격 사건 등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테러는 종잡을 수가 없다. 무기도 칼부터 도끼, 총, 배낭 폭탄에 이어 트럭까지 등장했고, 테러 장소도 패스트푸드점부터 열차, 축제장, 교회, 공연장까지 다양해졌다. 피해자 연령도 4세 아이부터 86세 신부까지로 폭넓고, 범행 시간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24시간 내내 벌어진다.
무엇보다 심각한 현상은 테러의 동기가 과거의 종교적인 이유와 이데올로기를 넘어 사회적 불만과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지친 유럽의 젊은이들 중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니 팍스 아메리카나에 식상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IS에 가입해 반미(反美) 전선에 뛰어들어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되고 있다.
페터 노이만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이제 테러는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젊은이들이) 테러에 빠져들게 만드는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라며 “고립과 무기력에 빠진 그들이 삶의 의미를 찾게 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그래서 시간은 더욱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은 2014년 9월 IS와의 본격적인 전쟁을 위해 다시 중동에 군홧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아직까지 승전은커녕 종전의 기미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유럽을 넘어 동남아시아까지 퍼진 IS의 테러는 다양하게 진화하며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11월 미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특별 연설에서 “9·11테러 여파로 만들어진 IS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설정된 국경선 등 국제 간 협약과 약속 자체를 무시하며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미국은 필요하다면 러시아 등과도 손을 잡고 최우선 과제로 IS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9·11테러 후 세계 테러의 진화 ▼
▽2001년 9·11테러(2977명 사망)
→알카에다가 기획한 2000년대 테러의 시초
▽2006년 7월 인도 뭄바이 테러(166명 사망)
→최초의 ‘소프트 타깃’ 테러. 퇴근 시간대 기차역과 통근 열차에서 7건의 연쇄 폭탄 테러
▽2015년 1월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12명 사망)
→유럽에 상륙한 이슬람 급진주의 테러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시내 공연장 등 테러(130명 사망)
→유럽 심장부에서 다중을 상대로 한 ‘소프트 타깃’ 테러
▽2016년 7월 프랑스 니스 테러(84명 사망)
→급진적 이슬람에 경도된 외로운 늑대와 사회 부적응자의 결합. 트럭으로 무작정 돌진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파리=동정민 특파원 / 황인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