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저항의 노래 가사 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가 문제가 됐다. 김민기는 밤새워 술을 마시고 서울 돈암동 야산 공동묘지에서 깨어났을 때 풀잎에 맺힌 이슬 위로 해가 떠오른 것을 보고 이 곡을 만들었단다. 엄혹한 시대에 기껏 통음으로 저항했던 청년의 자기 성찰인데도 음험한 상상력이 뛰어난 공안 당국은 불순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봤다. 유신정권은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면서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1971년엔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던 노래인데….
▷역설적이게도 ‘아침이슬’은 북한에서도 널리 불렸다. 북 당국이 남한 시민들의 투쟁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만든 선전 영상물에 등장했다. 하지만 따라 부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북 당국은 주민들이 노래에 담긴 저항의식에 눈뜰 가능성에 비로소 주목했고 1998년부터 못 부르게 금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북 당국이 모두 주민들이 상대에게 물들까 봐 두려워 금지시켰으니 참 기구한 노래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