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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교내대회 스펙 쌓으러 이과 가려고요”

입력 | 2016-09-06 03:00:00

고교생 ‘묻지 마 이과’ 심화



최근 고교 교내대회가 자연계열에 편중되자 당초 진로 희망과 달리 무턱대고 자연계열을 선택하는 고1도 늘어나고 있다. 동아일보 DB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고1 J 양. 올 3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인문계열을 희망했던 J 양은 최근 자연계열로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이유는 ‘더 좋은 학생부’를 위해서. 최근 대입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교내대회 수상실적은 고교생들에겐 ‘핵심 스펙’. 그런데 인문계열이 참가할 교내대회보다 자연계열을 위한 교내대회가 월등히 많다고 J 양은 판단하기 때문이다.

J 양은 “문과 학생들이 주로 참여하는 백일장, 토론대회, 독서대회는 이과생도 언어능력만 받쳐주면 참가해 충분히 수상할 수 있다”면서 “반면 창의인재탐구실험대회, 융합대회, 주제탐구발표대회 등은 ‘전교생’ 대상이지만 실제로 과학 지식이 부족한 문과생들은 참여하거나 수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교내대회, 이과 편중

교내대회 수상실적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학업능력과 전공적합성 등을 내세우는 효과적인 도구라는 생각이 확산하면서 일선 고교에선 교내대회들이 우후죽순 신설되거나 확대된다.

문제는 교내대회의 자연계열 편중이 심각하다는 점.

서울 강남구, 서초구에 있는 일반고 10곳(과학중점학교 제외)을 표본 조사한 결과 고교별 연간 교내대회 수는 평균 16.1개. 이중 과학발명품대회, 자연수리논술대회, 우수실험포트폴리오경진대회처럼 수학, 과학 관련 교내대회의 수는 평균 7.3개인데 반해, 지리상식퀴즈대회, 역사상식퀴즈대회, 정치경제시사퀴즈대회 등 인문계열 학생들이 주로 참여하는 대회는 평균 1.7개에 그쳤다. 나머지는 독서골든벨이나 영어말하기대회 등 문이과 학생이 공히 참여할 만한 것들이었다.

고교 교내대회가 자연계열에 편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들이 프라임(PRIME·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유치·진행이나 졸업생 취업을 위해 자연계열 정원을 늘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 고교 내 이공계 지망 학생들을 위한 대회와 동아리활동 등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는지를 주목하는 학부모도 많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대학 입학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자연계열 위주 교내대회를 많이 개최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대학 잘 가려면 무조건 이과”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학이나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도 “무조건 이과로 고(go)”를 외치는 고1들이 많다. 경기지역 고1 Y 양은 지난 학기에 열린 교내대회인 인문학 심포지엄에서 자연계열 선배들이 상을 받는 것을 보고 자연계열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Y 양은 “인문계열이 실험탐구대회 같은 교내대회를 준비하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자연계열이 글짓기대회에 참여해 성과를 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면서 “상을 많이 받아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북의 고1 K 군은 영어를 좋아해 문과를 선택하려 했지만 최근 고민에 빠졌다. 과학관련 교내대회가 언어관련 대회보다 교내에 훨씬 많기 때문.

K 군은 “이과에 가도 영어는 배울 수 있고, 교내대회 참여 폭도 문과에 비해 훨씬 넓어 대입에 유리할 것 같다”면서 “게다가 문과에 가면 취업과 같은 장래도 불투명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많다”고 말했다.



교내대회 실적, 대입 당락과 직결?

교내대회, 정말로 대입에서 결정적 변수일까. 서울 주요대학의 한 입학사정관은 “단순히 교내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이를 계열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면 위험하다”고 지적하면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자연계열을 선택했다가 오히려 수학, 과학 학업성취도가 떨어진다면 ‘전공적합성’ 평가 항목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우므로 대입에서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계열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강남의 한 고교 진학지도부장은 “문과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이과로 진학하는 학생 중 적잖은 수가 교과와 비교과 영역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송이 기자 songi12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