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 산업부 기자
국정감사는 행정부의 권한 남용과 예산 낭비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제도다. 헌법이 국회에 국정감사권이라는 엄청난 권한을 부여한 것은 국민 대신 행정부의 국정 운영 실태를 잘 살펴보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정책에 반영하라는 취지에서다.
문제는 일부 의원이 공개하기 힘든 무리한 자료를 요청하거나, 분석하기도 힘든 방대한 통계자료를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원들이 문제의 본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요청하는 자료는 국감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보지도 않을 자료를 만드느라 공무원들이 일반 행정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는 큰 낭비다.
또 다른 공무원은 “자료로만 설명하기엔 사안이 복잡해서 직접 만나 충분한 설명을 드리고 싶다고 의원실에 수차 연락했는데 ‘필요 없고 그냥 자료나 보내라’는 답변만 받았다”며 “사정이 이러니 국감 현장에 가보면 ‘과연 저 의원이 자료를 한 번이라도 봤나’ 싶을 정도로 엉뚱한 질의를 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부 공무원은 의원실에서 자료를 요청할 때 ‘갑질’을 톡톡히 한다는 불만도 털어놨다. 가령 오후 5시에 자료 요청을 하면서 ‘다음 날 오전까지 제출하라’는 식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9대 국회를 평가하는 보고서를 통해 일부 의원의 한심한 국감 사례를 소개했다. 한 의원은 어렵게 증인으로 채택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면 누구를 응원하느냐”라는 수준 낮은 질문을 던져 빈축을 샀고, 또 다른 의원은 출석한 증인에게 성희롱 의혹을 물으며 “일어서서 회장 ‘물건’ 좀 꺼내 보세요”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올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일하는 국회, 공부하는 정당’을 내세웠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도 국회 운영 전반에 관한 이슈를 공부하는 여러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런 모임이 보여주기 식의 이벤트가 아니라면 이번 국감이 국정 이슈에 대한 진지한 대안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장이 되도록 의원들이 본보기를 보였으면 한다. 읽지도 않을 자료를 잔뜩 요청해 쌓아만 놓고, 국감 현장에서는 피감 기관장들에게 호통만 쳐대는 구태 의원들을 국민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