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15> 대형차량 폭주를 막자 봉평터널 사고 희생자 아버지의 눈물
《 수십 t에 달하는 대형 차량은 순식간에 가장 위험한 흉기로 돌변한다. 한번에 많은 인원을 태우는 버스, 쓰러질 듯 위태롭게 짐을 실은 트럭. 이런 상황에서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졸면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운전자들이 있다. 대형 차량의 교통사고는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교통사고 치사율이 3.4명으로 승용차의 2배가 넘는다. 대형 차량 안전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교통정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친구 3명과 나란히 안치된 딸 7월 17일 강원 평창군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앞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수진 씨의 부모가 4일 딸의 유골이 안치된 경기 광주시의 한 추모공원 봉안당을 찾아 기도하고 있다. 이 씨 옆으로 함께 희생된 친구 3명도 나란히 잠들어 있다. 광주=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천사가 된 우리 딸”
“재판에 다녀오셨어요?”
“가도 수진이가 살아 돌아오지 않잖아요. 그 시간에 아내와 함께 교회에 가서 수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 딸 예쁘죠?”
이 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바탕화면에 수진 씨의 사진이 있었다. 수진 씨는 밝고 유쾌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상하이(上海)로 유학을 떠났다. 2년간 중국 생활에서도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중국에서도 50명이나 수진이 빈소에 찾아왔습니다. 멀리서도 수진이를 생각해 친구들이 와준 게 고맙죠. 지금까지 직접 또는 페이스북 등으로 수진이를 추모한 사람이 수천 명 됩니다.”
이 씨의 휴대전화에는 수진 씨의 동영상도 있었다. 어느 겨울 놀이터에서 수진 씨가 친구에게 “힘을 내,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모습이다. 이 씨는 “수진이 할아버지가 누구보다 손녀딸을 아꼈다”며 “이번 사고의 충격으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시다가 최근 복막염 수술을 받으셨다”고 말했다.
“수진아, 천국은 어때?”
“너무 좋아. 맛있는 것도 많고! 여기 사진 봐봐. 이 긴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고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어나시면 우리가 먹어.”
○ 사과조차 받지 못한 피해자들
딸을 보낸 뒤 이 씨는 매주 교회를 다니고 있다. 그는 “천사가 된 딸을 만나기 위해서는 딸만큼 신앙이 깊어야 한다”고 말했다. 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교회에서 이 씨를 다시 만났다. 이 씨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수진 씨의 중학교 후배 김모 씨(20)와 함께 예배에 참석했다. 김 씨는 발인 때 운구를 맡았다. 사흘 동안 빈소를 지키며 남몰래 계단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항상 의지가 됐던 누나를 기리기 위해 사고 후 매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가수가 되겠다는 누나와의 약속도 꼭 지킬 거예요.”
예배를 마치면 이 씨는 가족 등과 함께 인근 추모공원 봉안당에 안치된 수진 씨를 찾아간다. 내내 눈물을 보이지 않던 이 씨 아내는 이날 딸의 이름이 적힌 동판을 어루만지며 소리 죽여 오열했다.
수진 씨 옆에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 3명이 나란히 안치돼 있다. 마침 이날은 희생자 중 한 명인 장모 씨(21·여)의 생일이었다. 봉안당에는 장 씨의 남자친구가 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군번줄과 꽃이 남아 있었다.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달 31일에는 희생자 중 한 명인 이모 씨(21·여)의 대학동창 2명이 이곳을 찾았다. 경기 이천시에서 왔다는 동창 중 한 명은 봉안당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사고 때 렌터카를 운전했던 사람이 이 씨의 남자친구 김모 씨(25)다. 사고차량의 유일한 생존자인 그는 현재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다.
이 씨 부부는 다음 예배일인 11일 상하이에 있는 한인교회를 찾는다. 수진 씨가 중국 유학 중 다녔던 교회다. 이 씨 부부는 10일 출국해 상하이에서 딸의 유품을 정리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수진아, 상하이에서 보자.”
이 씨는 딸에게 짧게 인사를 건네고 추모공원을 떠났다. 그리고 가해자를 향한 말도 남겼다. 이 씨는 “41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냈으니 엄두가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유족들이나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실수면 그만인 건가. 기성세대의 안전불감증에 더 이상 꽃다운 청춘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용인=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