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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의 시장과 자유]국민 여론 오도한 송희영 前 주필의 펜

입력 | 2016-09-07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2008년 9월 15일 미국 대형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글로벌 금융위기의 신호탄이었다. 한국은 비교적 선방한 나라로 꼽히지만 되돌아보면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리먼 파산 직전까지 진행된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 시도가 대표적 사례였다.

‘리먼 인수’ 바람잡기

그해 6월 취임한 민유성 산은 총재(행장)는 리먼 본사 인수 의사를 밝힌 뒤 협상에 나섰다. 뒤에 밝혀졌지만 리먼 서울지점 대표 출신인 그는 퇴직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여금으로 지급되는 스톡어워즈(Stock Awards) 약 6만 주를 리먼에서 제공받은 상태였다.

민유성이 ‘리먼 인수’를 밀어붙이던 2008년 8월 조선일보 논설실장이던 송희영 전 주필은 칼럼을 통해 해외 IB 인수를 촉구하면서 “잘 고르면 몇 년 후 엄청난 수익을 거둘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 금융회사 인수합병(M&A)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고도 했다. 최근 드러난 송희영-민유성-박수환(뉴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남상태(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커넥션은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던 이 뜬금없는 주장의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산은의 리먼 인수 계획은 전광우 금융위원장 등이 “국책은행이 수십억 달러를 들여 손실 위험이 큰 해외 IB 인수에 뛰어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제동을 걸면서 막판에 무산됐다. 산은이 인수 협상 중단을 발표한 9월 10일은 리먼 파산 불과 닷새 전이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파산 후 헐값으로 추락한 리먼의 아시아·유럽 부문만 사들였는데도 결국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민유성이 추진하고 송희영이 바람을 잡은 산은의 파산 전 리먼 본사 인수가 성사됐다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대한민국 전체가 거덜 날 위험성이 농후했다.

송희영의 펜은 대우조선 민영화 무산에도 한몫을 했다. 공기업 민영화 논의가 진행되던 2008년 4월 그는 대우조선을 거론하면서 ‘재벌들에게 선물 돌리는 식의 매각 파티’라고 공격했다. 그 이후에도 대우조선을 “총수 없이도 세계적 회사로 성장한 회사”라고 치켜세웠다. 민영화 계획이 중단된 뒤 대우조선의 방만 경영은 더 심해졌고 ‘나랏돈을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대우조선의 진짜 오너는 국민이며 납세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송희영은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공기업 대우조선에서 사장 위의 회장처럼 군림한 인상이 짙다. 황제급 초호화판 외유를 비롯해 잇달아 밝혀진 특혜를 보면 송희영 일가(一家) 전체가 대우조선의 최고 귀빈이었다. 그는 자주 공무원의 관치(官治)와 대기업의 ‘황제 경영’을 혹독하게 비난했지만 대우조선과 산은을 쥐락펴락한 행태는 훨씬 저질의 ‘언치(言治)’였다는 말까지 나온다.

송희영의 대형 스캔들과 여론 오도(誤導)는 쟁쟁한 언론인들을 배출한 해당 신문사와 선후배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줬다. 일부 판검사의 일탈이 법조계를 강타한 것처럼 유력 언론사 고위 간부였던 송희영 파문으로 전체 언론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언론은 플레이어 아니다

언론은 객관적 팩트와 보편적 상식에 입각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말하는 제3의 관찰자에 머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권, 행정부, 기업의 세계에서 직접 뛰는 플레이어로 행세하려 해선 안 된다. 송희영의 행각은 언론인의 본분을 잊고 스스로를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착각한 도를 한참 넘은 탈선이었다. 그의 영욕(榮辱)을 지켜보면서 언어를 다루는 펜의 책임과 무게를 다시 한번 절감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