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워더(forwarder·운송주선인·선박의 적재공간을 할당받아 화주의 화물 운송 계약을 대행하는 업체) 임원 A 씨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근무하다 이번 주 초 급히 귀국했다. 거래를 이어오던 외국 화주들이 6개월∼1년 단위 장기 운송 계약에서 한국 선주사를 제외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7일 “한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장기 계약의 경우 현대상선도 배제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털어놨다.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해운업계에서 ‘코리아 브랜드’의 신뢰도가 추락하자 현대상선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운임 상승이나 대체 선박 운용으로 인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한국 해운사’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확산하면서 영업활동에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코리아 브랜드’ 신뢰 무너져
7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1일 화주들에게 현재 1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당 1700달러 대인 운임을 10월에 3000∼3200달러로 올리겠다는 운임 인상 계획을 통보했다. 선박 운임은 통상 한 달 전 해운사가 화주에게 조정 수준을 전달하면 화주와의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현대상선의 인상 계획은 다른 글로벌 해운선사들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임 인상이 이대로 확정되면 저가 운임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현대상선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통보한 수준의 운임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기대했다.
하지만 글로벌 화주들이 한국 해운사를 기피하는 현상이 현대상선의 걸림돌로 등장했다. 운임이 상승해도 한국 선사라는 이유로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면 공급 과잉인 해운시장에서 현대상선은 더 큰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뢰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며 “한진해운의 몰락으로 글로벌 선사들만 고스란히 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명 한국해양대 해운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1위, 글로벌 7위 해운사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 대책도 세워 두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한국 정부와 해운사에 대한 글로벌 신뢰도 추락은 해운업계는 물론이고 한국 경제 전체의 성장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오늘부터 ‘유창근호’ 시동
현대상선의 비상경영체제를 진두지휘할 유창근 신임 사장은 큰 부담감을 안고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유 사장은 20일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정식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될 예정이다. 하지만 회사의 비상 상황을 감안해 7일 인천항만공사 사장 이임식을 마친 뒤 8일부터 곧바로 업무보고를 받으며 위기 극복 대책 마련에 나선다.
현대상선은 정부의 요청으로 9일부터 한진해운을 대신해 순차적으로 대체 선박 13척을 투입한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관계자는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긴급 투입된 것으로 득실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라며 “미주 노선은 기존에 없던 항로여서 추가 이익을 낼 수 있겠지만 유럽 노선은 아직 실을 물량 규모나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해양 생태계 내 중소업체들 위기
한편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직·간접적 피해를 봤거나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은 항만 서비스 업체, 선박 수리업체 등 289곳. 모두 1만1000명이 일하고 있다. 조봉기 한국선주협회 상무는 “일차적으로는 해운 산업이 타격을 받겠지만 결국 해운과 관련 있는 업체 모두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