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4>인천 가좌시장 김보연씨
전통시장 안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비밀 공간에서 5명의 청년이 각자의 꿈을 꽃처럼 피우고 있다. 소금꽃 빌리지 안, 볕 좋은 창가에 옹기종기 놓인 선인장들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이 바로 김보연 대표(34)가 운영하는 수제 인테리어 소품점 ‘드로잉 선인장’이다.
○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 지닌 선인장
5일 오전 인천 서구 원적로 가좌시장 안에 있는 청년 창업 공동체 소금꽃 빌리지에서 김보연 드로잉 선인장 대표가 직접 만든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선인장에 반해 디자인 소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창업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인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김 대표가 선인장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20세 무렵. 유독 식물을 기르는 데 소질이 없던 그를 위해 한 친구가 ‘물을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며 선인장 화분을 선물했다. 누군가가 돌봐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힘으로 꿋꿋하게 자라는 선인장의 매력에 빠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전통의류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던 김 대표는 특기를 살려 선인장 디자인 소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선인장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예쁘게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가 하면 선인장 모양의 열쇠고리나 파우치 등을 손수 만들어 주문을 받아 팔았다. 용돈벌이가 쏠쏠했다.
본격적으로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어 판매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직장을 다니던 중이었다. 전공을 살려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지만 일에 쫓겨 좋아하는 선인장 디자인을 할 수가 없었던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자’라고 생각한 김 대표는 올해 4월 선인장을 주제로 삼은 인테리어 소품점 ‘드로잉 선인장’ 사업을 시작했다.
○ 작품과 상품 사이
그는 “창업하고자 하는 예술가가 많은데 ‘작품’과 ‘상품’의 차이를 스스로 잘 생각해 보고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애착을 갖고 만든 ‘작품’을 팔고자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먼저 작품이 ‘상품’이 될 수 있는지 검증을 받고 창업에 도전하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것. 그는 “나도 선인장에 빠져 선인장 소품을 만들었지만 현재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아기용 머리 장식품이 훨씬 반응이 좋다”며 “창업은 생계를 이어갈 수단이므로 취미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창업의 첫 꿈을 이뤄줬던 선인장 소품을 만드는 일은 계속할 생각이다. 김 대표는 “내 꿈을 펼치겠다고 시작한 사업인 만큼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선인장 소품을 계속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 청년창업 지원 서비스 찾아봐야
드로잉 선인장의 주 고객은 20, 30대 젊은 여성들이다. 전체 매출의 98%가 드로잉 선인장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들어오는 주문에서 나온다. 김 대표는 “청년창업은 다른 기반 없이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나 역시 그렇다”며 “브랜드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온라인 채널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달 중순부터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도 입점해 제품을 판매한다.
올해 초 둥지를 튼 가좌시장의 소금꽃 빌리지에서의 활동도 이어갈 예정이다. 소금꽃 빌리지 매장에 함께 입점한 청년숍 4곳과 함께 정기적인 플리마켓도 진행하고 있다. 소금꽃 빌리지는 여럿이 모여 한 공간을 나눠 쓰는 형태로 구성돼 있는데 김 대표는 이런 창업 방식에 크게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 혼자 장사를 해봤지만 여럿이 함께 창업의 어려운 점을 고민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좋다”고 했다.
가좌시장 내 소금꽃 빌리지는 김 대표와 같은 청년창업가를 모집하기 위한 2차 공고를 한 상태다. 김 대표는 “서로 생각을 나누는 좋은 이웃을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미소 지었다.
● 아이디어 반짝 ‘소금꽃 빌리지’… 기증도서로 채운 ‘만화카페’…
둘러보면 좋은 가좌시장 명물들
가좌시장에는 청년 창업가 5명이 모여 상품을 제작 판매하는 공간 ‘소금꽃 빌리지’가 있다. 사진은 5개 매장 중 수입 잡화를 파는 ‘프롬 어브로드’. 인천=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여느 전통시장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는 숨은 보석이 있다. 청년 창업가 5명이 모여 작업하고 판매하는 ‘소금꽃 빌리지’. 땀 흘린 옷이 마르고 나면 생기는 얼룩을 ‘소금꽃’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따온 이름이다. 청년들이 열심히 땀 흘려 움직일수록 꽃이 핀다는 의미다.
이곳에는 인테리어 소품점 ‘드로잉 선인장’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든 인형을 팔고 직접 제작도 해볼 수 있는 ‘스토리 마켓’ 생활한복을 직접 만들어 대여·판매하는 ‘아토 의상실’, 수입 잡화점 ‘프롬 어브로드’와 향초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는 ‘별사탕 팩토리’가 모여 있어 크지 않은 공간임에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천 서구와 협력해 청년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이찬관 가좌시장 상인회장은 “매장이 2층에 있다는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통로를 보완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며 “이달 13일까지 2차 모집 접수도 하고 있고 추후에는 시장 자체의 청년 창업 인턴십 등의 제도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가좌시장의 또 다른 명물은 ‘홍두깨 칼국수’다. 매장 입구부터 탱탱한 면발과 만두를 만들고 있는 직원들이 친절하게 맞아준다. 손칼국수 한 그릇 가격이 3500원. 직접 담근 김치를 수시로 내 오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식사시간이면 칼국수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전통시장을 찾은 고객들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시장에서 운영하는 ‘만화카페’도 흥미롭다. 가좌동 주민들이 기증해 모은 만화책이 두 벽면을 가득 채운 이 카페에서는 1000원이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가좌시장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가재울사거리 부근(가좌3동 280 부근)에는 1715년에 지은 300년 된 고택이 남아있다. 공단에 둘러싸여 있지만 여전히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고택은 청송 심씨 가옥으로 1940년대 개축해 문화재적인 가치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지역민들은 이곳이 야학 장소로 사용되는 등 충분히 의미가 있다며 보호를 바라는 상황이다. 지금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조금 쓸쓸한 모습이다.
○ 운영 시간
소금꽃 빌리지: 평일과 토요일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일요일은 휴무.
만화 카페: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인천=손가인 기자 ga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