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논설위원
여의도만 가면 왜?
‘믿거나, 말거나’ 같은 얘기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박 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이정현 수석비서관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었다. 귀가 직전 혼자 즐기는 스크린 골프였다. 그 얘길 들으면서 ‘박근혜 정부 실세의 스크린 골프라, 참 이정현스럽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다. 집권당 최고위원과 대표가 된 뒤에도 마을회관이나 군대 내무반에서 아무렇게나 자는 그는 어쩌면 특권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 이 대표가 5일 첫 국회 연설의 일성(一聲)으로 국회의원 특권 개혁을 부르짖은 것은 울림이 있다. 이 대표는 연설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선배의원들 따라 하다 보니 걸음걸이가 달라지고 말의 속도와 말투조차 달라졌다”고 토로했다. 초선 의원들은 과거 운동권의 ‘의식화 교육’ 못지않은 ‘특권화 교육’ 과정을 거친다. 공개석상에서는 ‘존경하는 ○○○ 의원’이라고 부르지만 커튼 뒤에서는 철저하게 선수(選數) 순이다.
최근 국회에서 국민통합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다. 국회의장이 인사말만 하고 떠난 것은 이해되지만, 토론자였던 여야 의원도 중간에 자리를 뜨거나 한참 뒤에야 나타났다. 방청석에서 “토론 주제가 국민통합인데, 여야 의원부터 한자리에서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니 국민통합이 되겠느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얼굴만 들이밀고 가는 국회의원만 욕할 일도 아니다. 국회의원급은 되는 사람이 참석해야 행사의 격이 올라간다고 믿는 이 사회의 속물근성이 뒤늦게 나타나 일찍 떠나는 결례를 범해도 괜찮다는 특권 의식을 키운다. 우리 안의 ‘특권 선망’부터 내려놓아야 셀프 개혁이 사실상 불가능한 ‘특권 내려놓기’를 밀어붙일 수 있다.
단단한 ‘특권화 교육’
어느 사회든 특권계층은 있게 마련이다. 사회가 특권을 용인하려면 특권층의 자기희생이 선행돼야 한다. 자기희생은커녕 고급 외제차에 대박 주식도 모자라 남의 돈으로 내연녀에게 줄 오피스텔 선물까지 챙기는 특권층을 보면 자식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하기야 다른 정부 같으면 열두 번도 바뀌었을 사람이 아직도 청와대 핵심 요직을 지키며 ‘특권의 끝판왕’으로 군림하는 한 특권 개혁은 요원하다. 정녕 이 나라에 미래가 있는가.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