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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업체 세워 학교급식 입찰 싹쓸이

입력 | 2016-09-08 03:00:00

6200회 짬짜미 1200억 챙긴 29명 검거
학교 2400곳에 식자재 대리 납품… 가짜 소독증명서 등 위생관리 엉망
일선학교 영양교사 채용 40% 그쳐… 감독시스템도 없어 비리 잇달아




어린 학생들의 먹거리로 돈벌이한 어른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납품 단가를 턱없이 부풀려 학교에 식재료를 납품하던 업체 대표와 영양사가 구속됐는데도 학교 급식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학교 급식 납품 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유령업체 내세워 1200억 원 규모 식자재 납품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학교 급식과 관련된 입찰방해 및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강모 씨(45)와 장모 씨(48)를 구속하고 2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강 씨 등은 자신의 가족 혹은 지인 명의로 최대 8개의 유령업체를 만든 후 자신의 지역에서 발주되는 학교급식 입찰공고 예상 가격을 뽑아 협력업체들과 공유한 뒤 입찰에 참가했다. 유령업체를 이용해 여러 번 입찰하는 수법으로 낙찰률을 높이고 다른 지역 업체가 낙찰받으면 그 지역 관할 업체가 대리 납품하도록 했다. 이들은 이런 방법으로 2012년 1월부터 올 5월까지 34개 업체 명의로 6200여 회에 걸쳐 1208억 원 규모의 식자재를 납품했다.

이런 식의 대리 납품은 식자재의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 식중독 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할 수 없다. 특히 강 씨가 운영하는 업체는 올해 상반기에 식자재 배송 차량과 보관 장소를 소독하지 않고도 소독한 것처럼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받거나 위조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아직 ‘나쁜 먹거리’가 학교에 납품됐다는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과 계약을 맺은 업체들 중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허위로 원산지 등을 속인 업체가 있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 학교는 ‘깜깜이’, 학부모 학생은 ‘분통’

강 씨 등이 불법 담합으로 식자재를 납품한 학교는 서울·경기 지역 전체 초중고교 3688곳 중 3분의 2에 이른다. 하지만 범행 대상이 된 학교들은 피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3월과 4월 납품받은 서울 성동구의 한 중학교뿐 아니라 올해 3월 납품을 받은 성북구의 초등학교와 강남구의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관계자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관리하는 전자조달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누가 입찰에 참여했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급식 관련 문제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불신과 우려를 함께 보이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을 둔 학부모 송모 씨(52·여)는 “수학능력시험이 코앞이라 좋은 것만 먹이려고 하는데 학교 급식도 이젠 믿을 수 없어 점심, 저녁용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녀야 할 판”이라고 분개했다.


○ 3무(無) 현상을 끊어라

영양교사와 전문 공무원, 그리고 급식 전반을 관리 감독할 시스템. 현재 국내 학교 급식에 사실상 없는 것이다. 급식소를 운영하는 학교의 경우 영양교사를 반드시 배치해야 하지만 전국 1만여 학교 중 4000여 곳에만 영양교사가 고용돼 있다. 또 교육부에는 학교 급식을 전반적으로 관리 감독할 전문성 있는 공무원도 없다. 게다가 급식을 전문 업체에 위탁하지 않고 대부분 학교가 직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런 3무 현상을 없애지 않으면 학교 급식 비리는 끊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개별 학교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일원화된 체계가 필요하다”며 “식재료의 품질, 납품업체와 영양사, 학교장 등의 유착 관계를 근절할 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혁 hack@donga.com·김단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