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있는 로봇 같은 물건은 뭡니까?”
올해 4월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펜트하우스. 양도소득세 20억 원을 내지 않은 골프장 운영업자 A씨가 살고 있는 걸로 알려진 집이었다. 국세청 조사관이 체납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수색을 위해 집에 들어서자 특이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별 거 아니다”며 시치미를 떼던 A씨는 조사관의 잇단 추궁에 결국 “고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아트 작품”이라고 털어놨다. 구입가격이 4억 원에 달하는 고가 예술품이었다. 국세청은 A씨 집에서 백 작가 작품 외에도 사진작가 김중만의 사진 등을 추가로 찾아내 압류했다.
국세청은 올해 상반기(1~6월)에 A씨처럼 5000만 원 이상의 세금을 고의적으로 안 낸 고액체납자들로부터 8615억 원의 세금 및 가산금을 징수했다고 8일 밝혔다. 이런 추세가 하반기에도 이어지면 강제 징수·확보액은 지난해(1조5863억 원)를 넘어서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세무조사를 받은 뒤 소득세 10억 원 납부 결정을 받은 B씨는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다 국세청의 압류 조치에 앞서 은행계좌에 있던 돈을 모두 인출했다. 이에 국세청은 올해 초 경찰 협조를 받아 B씨의 집 수색에 나섰다. 완강하게 반항하던 B씨를 밀어낸 조사관이 안방 붙박이장을 열자 5만 원짜리 현금 다발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4억 원에 달한 현금은 그대로 압류 조치됐다.
이외에도 기상천외한 사례는 많다. 사채업자 C씨는 세무조사를 통해 증여세 50억 원을 부과 받았지만, 납부를 거부한 채 부인 명의의 고급 빌라에 숨어 살았다. 국세청은 잠복 조사를 통해 C씨가 부인 빌라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관이 초인종을 누르자 부인은 “남편과 별거하고 있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C씨가 살고 있는 사실을 알고 찾아왔다”는 조사관의 채근에 부인은 마침내 손을 들었다. 집에 들어선 조사관이 집안 구석구석을 뒤진 결과 발코니 옆 다용도실 세탁기 안에서 10억 원 어치의 채권서류가, 화장실 물통 밑에선 수표와 현금 2200만 원이 발견됐다. C씨는 “욕실까지 뒤질 줄은 몰랐다”며 겸연쩍어했다.
서울 강남구에 여관 건물을 보유했던 D씨. 건물을 팔면서 양도소득세 20억 원을 내지 않고 버텼다. 또 거액의 뭉칫돈을 은행에서 수표로 인출한 뒤 요양원에 위장 입원했다. 이 사실을 알아낸 국세청은 D씨를 찾아가 몸수색을 벌였고, 조끼 주머니에 있던 안경지갑에서 금목걸이와 수표 다발을 발견했다.
● 은닉재산 신고 시 포상금 최대 20억 원
이런 식으로 고액체납자에게 거둬들이는 체납액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3%(1511억 원) 증가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재산을 숨겨놓고 호화롭게 생활하는 것으로 의심될 경우 재산은닉 혐의 분석 시스템을 가동해 체납자의 재산과 소비지출 내역을 면밀히 확인한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또 타인 명의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숨길 경우 민사소송은 물론 사안에 따라 체납처분 면탈범으로 검찰에 고발 조치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고액 체납자에 대한 조치의 강도가 더 높아진다. 연말에 국세청 홈페이지에 오르는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의 공개 기준이 체납액 5억 원 이상에서 3억 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체납자의 은닉재산을 신고할 경우 지급되는 포상금은 최대 10억 원에서 지난해 5월부터 20억 원으로 높아졌다. 김현준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부동산 허위양도, 현금인출 등으로 재산을 숨긴 혐의가 발견되면 현장수색 및 소송을 통해 끝까지 추적하고 이에 협조만 해도 조세범처벌법에 따른 조치를 받는다”고 말했다.
세종=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