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첫날 국회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서별관 청문회)’가 소득 없는 맹탕으로 끝났다.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해운업의 부실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구조조정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핵심 증인들이 출석하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서별관회의 자료, 감사원 감사보고 자료, 대우조선 회계조작 자료 등 의원들이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허탕 청문회를 만들었다.
이번 청문회는 6월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해 서별관회의에서 청와대와 금융위원회가 대우조선에 혈세 지원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폭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을 사임한 홍 전 회장이 이날 사유도 알리지 않은 채 불출석한 데 정부 여당의 묵인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당시 서별관회의를 주도했던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당시 경제부총리)과 안종범 대통령정책조정수석(당시 경제수석)의 증인 채택을 한사코 반대한 여당은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고도 바로잡을 기회를 외면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여당의 ‘최-안 증인 반대’와 자신들이 요구하는 ‘백남기 농민 청문회’를 바꾸는 정치적 거래를 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여야정(與野政) 합작으로 청문회 자체가 부실이 돼버린 바람에 국민은 왜 정부가 부실 덩어리 대우조선에 4조2000억 원의 혈세를 넣어 살렸는지 알 수가 없게 됐다. 서별관회의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가 대우조선 지원 여부의 파장까지 고려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런 컨트롤타워가 서별관에서든 어디든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진해운은 덜컥 ‘사망 선고’를 받고 글로벌 물류대란이 일어난 것 아닌가.
지금처럼 정치적 호통에 그치는 한국적 청문회로는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파악해 우리 경제·산업의 구조를 재구축하는 계기를 만들기 어렵다. 특히 최경환 의원이 “정책 당국이 막무가내식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청문회 아닌 페이스북에서 주장한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 앞으로 구조조정이 계속돼야 할 텐데 이런 식이면 부실 구조조정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1997년 한보 사태가 경종을 울렸음에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외환위기 사태를 맞은 당시의 과오를 재판(再版)해선 안 된다.
청문회 마지막 날인 오늘 여야는 치밀한 질문으로 대우조선 부실의 구조적 문제와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의 실체에 다가서야 한다. 정부는 정직하게 청문회에 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