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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부실 서별관청문회 하다간 ‘부실 구조조정’ 또 일어난다

입력 | 2016-09-09 00:00:00


어제 첫날 국회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서별관 청문회)’가 소득 없는 맹탕으로 끝났다.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해운업의 부실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구조조정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핵심 증인들이 출석하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서별관회의 자료, 감사원 감사보고 자료, 대우조선 회계조작 자료 등 의원들이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허탕 청문회를 만들었다.

이번 청문회는 6월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해 서별관회의에서 청와대와 금융위원회가 대우조선에 혈세 지원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폭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을 사임한 홍 전 회장이 이날 사유도 알리지 않은 채 불출석한 데 정부 여당의 묵인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당시 서별관회의를 주도했던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당시 경제부총리)과 안종범 대통령정책조정수석(당시 경제수석)의 증인 채택을 한사코 반대한 여당은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고도 바로잡을 기회를 외면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여당의 ‘최-안 증인 반대’와 자신들이 요구하는 ‘백남기 농민 청문회’를 바꾸는 정치적 거래를 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여야정(與野政) 합작으로 청문회 자체가 부실이 돼버린 바람에 국민은 왜 정부가 부실 덩어리 대우조선에 4조2000억 원의 혈세를 넣어 살렸는지 알 수가 없게 됐다. 서별관회의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가 대우조선 지원 여부의 파장까지 고려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런 컨트롤타워가 서별관에서든 어디든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진해운은 덜컥 ‘사망 선고’를 받고 글로벌 물류대란이 일어난 것 아닌가.

미국에선 2001년 12월 최악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꼽히는 엔론 파산 사태가 터지자 의회가 2002년 1월 11개 상임위별로 청문회를 열었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고 어떻게 제도를 정비해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지 6주간 논의한 결과 1년 후 정치자금법, 금융감독법, 회계감사 관련법 등 근본적 해결책이 나오면서 정치·경제 시스템은 한 단계 정화될 수 있었다. 이런 것이 민주주의의 자정(自淨) 능력이다.

지금처럼 정치적 호통에 그치는 한국적 청문회로는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파악해 우리 경제·산업의 구조를 재구축하는 계기를 만들기 어렵다. 특히 최경환 의원이 “정책 당국이 막무가내식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청문회 아닌 페이스북에서 주장한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 앞으로 구조조정이 계속돼야 할 텐데 이런 식이면 부실 구조조정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1997년 한보 사태가 경종을 울렸음에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외환위기 사태를 맞은 당시의 과오를 재판(再版)해선 안 된다.

청문회 마지막 날인 오늘 여야는 치밀한 질문으로 대우조선 부실의 구조적 문제와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의 실체에 다가서야 한다. 정부는 정직하게 청문회에 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