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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7억’ 전병두, 선수는 감독 소유물이 아니다

입력 | 2016-09-09 05:30:00

만 32세 투수 전병두(SK)는 끝내 부상과 수술을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를 선택했다. 전병두는 2009년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133.1이닝에서 2198개의 공을 던졌다. 안타까운 부상과 은퇴의 시작이었다. 스포츠동아 DB


7년간 7억3100만원. 전병두(32)가 SK에서 맺은 연봉 계약을 통해 받은 돈이다. 20대 초반에 병역 혜택까지 받은 좌완 파이어볼러, FA(프리에이전트) 자격만 얻었어도 수십억의 돈이 따라왔을 그에게 남은 건 30대 초반의 은퇴 선언뿐이었다.

SK 왼손투수 전병두가 은퇴를 선택했다. 2011년 11월 왼 어깨 회전근 재건 수술 이후 5년 가까이 재활에 매달렸지만, 끝내 1군 마운드로 돌아오지 못했다. 올 시즌을 마지막이라고 여겼던 그도 구단에 은퇴 의사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전병두도, SK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구단 입장에서 1군 출장기록 없이 재활만 하고 있는, 즉 연봉고과가 아예 없는 선수를 5년이나 기다려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전병두는 SK에 아픈 손가락이었다.

SK는 “1군 마운드에서 한 번 던져보는 게 소원이었다”는 전병두의 꿈을 이뤄주기로 했다. 구단 역사상 은퇴경기는 한 번도 없었지만, 전병두를 정규시즌 최종전인 10월8일 문학 삼성전에 선발 혹은 불펜으로 한 차례 등판시키기로 결정했다. 2011년10월6일 무등 KIA전 이후 1829일만의 1군 등판이자, 그의 은퇴경기다.

● 전도유망한 좌완 파이어볼러, 영광과 시련의 2009년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두산에 입단한 전병두는 2005년 7월 외국인투수 다니엘 리오스와 트레이드돼 KIA 유니폼을 입었고, 2008년 5월엔 SK로 이적했다. 2006년 제1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 뽑혀 4강 진출로 병역혜택도 얻은 전도유망한 왼손투수였다.

SK 유니폼을 입은 2008년까지만 해도 그는 1군에서 선발 기회를 부여받던 모두가 탐내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2009년 들어 ‘마구잡이 등판’이 시작됐다. 그해 전병두는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49경기에 등판, 8승4패 8세이브 1홀드 방어율 3.11을 기록했다. 133.1이닝을 투구해 규정이닝에 진입해 방어율 2위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전병두는 선발 11경기, 경기 마지막 투수로 20경기 등 보직을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가 기록한 2198개의 투구수는 SK의 에이스 김광현의 투구수(2199개)와 거의 같았다.

전병두. 스포츠동아DB


● ‘마구잡이 등판’ 희생양이 된 전병두

SK 사령탑이었던 김성근 현 한화 감독은 그때나 지금이나 불펜에 긴 이닝을 막을 수 있는 ‘스윙맨’을 두는 걸 좋아한다. 선발과 불펜이 모두 가능한 전천후 요원을 때에 따라 등판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충분한 휴식 없이 마운드에 올라 긴 이닝을 던지기 일쑤다. 전병두가 그 중심에 있었다.

전병두는 그해 8월15일 대전 한화전에서 1.2이닝, 24개의 공을 던지고 이튿날 3이닝, 44구를 던졌다. 하루 휴식 후 18일 사직 롯데전에서 69개의 공을 던지며 4이닝 세이브를 한 그는 20일 사직 롯데전에 재차 등판해 1.2이닝 동안 20구를 소화했다. 8월27일 문학 KIA전부터 9월3일 잠실 두산전까지는 8일간 5차례 등판해 9.1이닝, 129구를 던지며 3세이브를 수확했다. 이중 1이닝 이하로 던진 건 딱 1차례뿐이었다.

2009년 규정이닝이라는 훈장도 얻었지만, 그해 말 전병두는 어깨 통증으로 일본에서 정밀검진을 받고 3개월 재활 판정을 받았다. 이듬해 5월 말 1군에 복귀한 전병두는 선발 7차례 포함 27경기서 67.2이닝을 던지고 5승2패 1홀드를 기록했다. 2011년 51경기(선발 4경기) 3승3패 3세이브 8홀드 방어율 3.80을 기록한 게 전병두 프로 인생의 마지막 성적이었다.

전병두. 스포츠동아DB


● 수십억 받는 FA, 초라한 전병두의 보상

수술 이후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매년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돼 재활, 2군 캠프도 갈 정도로 구단의 배려가 있었지만, 재기 가능성이 극도로 낮은 회전근에 칼을 댄 게 문제였다. 일부 전문가는 “당시 수술 대신 재활을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혹사는 지울 수 없는 상처일 뿐이다.

올해 7월9일 화성 히어로즈와의 3군 연습경기에서 18개의 공을 던져 1이닝 1안타 1볼넷 2탈삼진 1실점하며 재기의 희망을 밝힌 게 마지막이었다. 당시 그가 던진 최고구속 134㎞는 150㎞에 육박하던 전성기를 감안하면 너무나 초라했다.

전병두는 처음 SK와 연봉계약을 한 2009년 4500만원을 받았다. 2010년 1억2000만원, 2011년 1억3000만원, 2012년 1억4000만원 정도가 그가 활약을 인정받아 받은 액수다. 그리고 그라운드와 멀어지면서 2013년 1억1000만원, 2014년 8000만원, 지난해 5600만원, 올해 5000만원으로 점점 추락했다.

7년간 SK에서 받은 연봉은 7억3100만원이었다. 다른 선수들이 수십억의 ‘FA 대박’을 치는 걸 멀리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구단은 전병두의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하겠단 입장이다. 전병두가 보낸 5년의 시간은 한 가지 교훈을 남겼다. 선수는 ‘감독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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