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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촌에 장벽 세우려는 英-佛… “트럼프 닮아가나” 비난 쏟아져

입력 | 2016-09-09 03:00:00

칼레에 4m 높이 1km 장벽 추진… 양국 정부 “밀입국 막기위해 불가피”
앰네스티 “인간 존엄성 외면한 결정”




“트럼피즘(Trumpism)이 영국에 상륙했다.”

영국 녹색당 캐럴라인 루커스 의원은 8일 영국과 프랑스가 프랑스 북부 칼레 난민촌에 대형 장벽을 설립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장벽을 짓는다고 했을 때 섬뜩한 느낌이 들었는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칼레 대장벽’에 대한 난민단체와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 양국 정부는 칼레 항구 인접 고속도로를 따라 4m 높이에 길이 1km의 장벽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올해 말쯤 끝나는 장벽 건설에는 200만 파운드(약 29억 원)의 비용이 든다. 영국 정부는 “칼레 난민들이 도버 해협을 오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항구 진입로를 달리는 화물차에 돌멩이, 나무토막 심지어 대형 톱과 쇼핑카트까지 던져 멈춰 세운 뒤 올라타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며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항구로 가는 길 울타리에는 1월 3000개이던 구멍이 2만2000개로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양국 정부가 1년 이상 고민한 칼레 난민 해법이 겨우 장벽이냐” “비열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국가의 끔찍하고 멍청한 결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영국지부 난민 담당자인 스티브 시먼즈 씨는 “난민 위기를 다루는 유럽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실패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하지 않은 충격적인 결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영국으로 건너가고 싶어 하는 난민들이 지난해 프랑스 북부 칼레에 모여 난민촌을 형성한 후 영국과 프랑스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프랑스는 올해 초 난민촌 절반을 해체했지만 난민 수는 오히려 늘어 9000명이 됐다. 난민들 사이에 출신국끼리 나뉘어 칼부림을 하고, 지역민들은 “도저히 못 참겠다”며 시위에 돌입했다. 프랑스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은 지난주 칼레를 방문해 “난민촌을 완벽하게 해체하겠다”고 했지만 시기는 약속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지난주 양국 내무장관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칼레 대장벽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는 ‘난민 수호자’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달 1일 그가 오슬로에 있는 왕실공원에서 한 5분 길이의 연설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하랄 5세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 알라를 믿는 사람, 우주를 믿는 사람, 종교가 없는 사람도 똑같은 노르웨이인”이라며 통합을 강조했다. 최근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철조망을 국경에 세우려 하고 망명한 난민들을 러시아로 추방하는 등 강경 대응을 하고 있는 노르웨이 정부에 제동을 건 것이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