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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한기흥]추미애의 전두환 집 방문 취소

입력 | 2016-09-09 03:00:00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신년인사를 오는 5, 6공화국 인사들에게 연희동 자택을 개방했다. 거리는 가깝지만 두 집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전 전 대통령은 한복 차림으로 보료 위에 앉아 세배를 받았다. 덕담을 나눌 때도 특유의 입심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패밀리’ 분위기였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양복을 입고 응접실에서 손님들을 악수로 맞았다. 찻잔을 앞에 두고 다소곳이 신년인사를 나눴다. 정치부 기자 시절 두 집을 가 본 필자의 기억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2007년 정초 전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갔다가 비난 글이 폭주해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곤욕을 치렀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원 지사는 “통합의 기적을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일도 감내할 수 있다”고 했지만 개혁을 내세운 소장파 이미지엔 큰 타격이었다. 전죄(前罪)에서 자유롭지 못한 전직 대통령을 찾는다는 것이 국가원로 예우 차원이라 해도 정치인으로서는 부담이다.

▷12일 취임 인사차 전 전 대통령을 예방하겠다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안팎의 들끓는 비판에 어제 결국 방문을 취소했다. 전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민주당 대표가 찾아가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추 대표는 국민 통합의 취지였다지만 전 전 대통령을 보는 싸늘한 여론에 식겁했을 것이다.

▷2002년 5월 당시 민주당 노무현 대선 후보는 13년 만에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울 상도동 자택을 찾아 세 차례나 크게 머리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당시 한나라당에서 “1990년 3당 합당 후 YS에 대해 입에 담기 거북한 욕설을 서슴지 않더니 PK(부산경남) 표가 급했나 보다”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추 대표는 전 전 대통령 자택 방문 전에 취소했지만 신중하지 못했다. 현충원을 찾는 야당 대표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와 함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도 찾기 시작했지만, 살아 있는 전 씨의 집은 아직도 금단의 구역인 모양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