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절친’에서 ‘배신자’로
김 검사와 고교 동창 사이에 오간 메시지와 통화 내용은 술집, 여자, 오피스텔이 등장하는 저속함에 듣기가 민망하지만 유독 서로를 ‘친구야’라고 부르는 대목이 눈에 띈다. 김 검사와 친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에서 각각 전교 회장과 학급 반장으로 만나 28년간 우정을 쌓아 온 ‘절친’이다. 고교 친구는 평생 친구라고들 한다. 인생에서 가장 꿈 많고 순수한 시절에 맺어진 관계여서 그럴 것이다. 친구 관계가 다른 관계와 다른 점은 일방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 친구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소위 ‘시다바리’ 노릇을 할 때부터 우정은 금 가기 시작한 것이다.
‘검사님의 이중생활’은 흥밋거리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수사 무마 청탁은 범죄다. 김 검사는 친구에게 “나도 살아야 너도 산다”며 거짓 진술을 요구하면서도 검찰에서는 “동창 사업가가 나를 팔고 다닌다”며 이중 플레이를 했다. 우정은 배신이란 양념을 필요로 한다던가. 격분한 친구는 김 검사와의 통화 내용을 폭로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실패해 사업가가 된 친구는 말한다. “나도 나쁜 놈이지만 검사는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서울메트로 지하철 매장 입점 로비 명목으로 9억 원을 챙기고 정 대표에게 홍만표 변호사를 소개해 준 법조 브로커 이민희 씨는 홍 변호사의 고교 1년 후배다.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고교 동창이 대주주로 있는 휴맥스해운항공에 일감을 몰아 주고 이 회사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해 배당금 3억 원을 챙겼다. 남 사장의 동문 사랑은 남달랐던 것 같다. 그는 2011년 다른 고교 동창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 손자회사인 부산국제물류(BIDC)의 하청업체로 지정해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고 개인 운전기사 월급 3000만 원을 받았다.
친구, 그 부패의 약한 고리
친구는 법이나 제도, 윤리의식 등 모든 잠금장치를 뚫는 만능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며 만인이 명문학교 입학 경쟁에 나서는 진짜 이유도 학연을 얻기 위한 목적이 크다. ‘스폰서 검사’가 개인의 일탈로 보이지 않는 까닭은 수많은 엘리트가, 아니 엘리트일수록 우정이란 이름으로 부패하는 줄도 모른 채 부패에 젖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