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1990년대 초 KTX 건설 여부를 두고 국가적으로 찬반을 다투던 일이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KTX는 실질적으로 전국 반나절 생활권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경제적인 효과도 막대하다. KTX 건설을 반대하던 사람들에게 “지금이라도 20조 원(경부고속철도 1단계 건설비)을 되돌려 줄 테니 지금 우리의 KTX를 없던 것으로 되돌리자”라고 농담을 건네고 싶을 정도다.
노선이 지속적으로 확장되면서 이제는 전국 상당수 지역이 KTX 이용권역에 포함됐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는 KTX가 운행되지 않거나 역까지의 거리가 멀어 이용이 불편하다. 이런 곳에서는 KTX 정차역 신설을 요구하는 민원이 거세다. 지방자치단체, 지역단체,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압력을 가한다.
원칙은 간단하다. 정차역을 신설하면 KTX에 대한 지역 주민의 접근시간 감소와 신규 승객 증가라는 편익이 발생한다. 반면 다른 열차 승객들(통과여객)의 이용시간이 늘고 역 건설·운영비는 물론, 10량짜리 열차 기준으로 300억 원이 넘는 차량 구입비가 추가로 필요해진다. 그 차이를 비교해 정차역 신설의 편익이 비용보다 크다면 경제성 차원에서 정차역을 신설하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원칙만을 따질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서로 소통과 대화를 통해 윈윈(Win-Win)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근 경춘선 ITX-청춘의 요금인상 문제로 지역사회와 코레일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으나, 대화와 이해를 통해 요금조정 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진 바 있다.
일반철도 정차역 신설의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다. 일반철도의 경우 기존 노선의 중간에 정차역을 신설하게 될 때는 새로 발생하는 적자를 정차역 신설을 요구한 지자체에서 부담해 왔다. KTX 정차역의 신설과 관련해서도 이러한 해결 방안들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정차역 신설이 꼭 필요한지, 도시철도(일반철도나 트램)나 급행버스 등 연계교통체계를 운영해 KTX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는 없을지 등에 대한 논의를 사전에 면밀하게 진행한다면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