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전략硏 선임 연구위원 이춘근
이춘근 박사는 6년 전부터 한국 핵무장의 불가피론을 말해온 외교안보 전문가다. 최근 펴낸 책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을 한 그는 “한국의 핵무장은 한미 동맹을 해치는 일이 아니다. 미국 내 기류도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북핵 위협이 코앞에 닥친 지금 한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미국에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허문명 논설위원
중국은 북한을 죽이지 않는다
―5차 핵실험이 의미하는 것은 뭔가.
“핵 기술은 핵탄두를 소형화 경량화해 미사일에 장착시키는 게 핵심이다. 핵탄두와 미사일은 한 세트다. 권총강도는 권총(미사일)에 총알(핵탄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위협이 된다. 5차 핵실험은 권총에 장착할 수 있는 총알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언제든 장전해 넣어 쏴보여 줄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
―김정은은 어떻든 짧은 기간에 목표 달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의 정신상태가 통제불능”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좋게 해석하면 이제는 매를 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렇게 진단하면 대책이 없는 거다. 게다가 하루라도 빨리 핵무기 체계를 완성해야 한다는 목표를 향해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고 또 성공하고 있는 김정은을 통제불능으로 몰아붙일 일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전쟁 위험이 높다는 것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국가 지도자라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국제사회 전체를 우습게 보고 있다. 하기야 제재가 약발이 안 먹히니 당연하지 않겠나. 김정은은 중국이 북핵을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국 입장은 뭔가.
“북한에 대해 ‘말썽꾸러기라도 살아만 있어다오’ 전략이다. 그래야 미국 일본으로부터의 위협을 막아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핵에 맞서다 죽거나, 항복하거나
―그야말로 국가 비상 사태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로 평가받는 미국의 한스 모겐소(1904∼1980)는 핵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가 싸울 때 없는 나라의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다고 했다.”
―그게 뭔가.
“하나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 맞서다 죽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항복하는 것이다. 북은 핵보유국이 되는 순간 대한민국에 핵을 떨어뜨리겠다는 위협만 가지고도 총 한 방 안 쏘고 이길 수 있게 된다. 일부에서는 김정은이 자멸의 길을 택할 리가 없다며 북핵이 우리에게 직접적 위협이 안 된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김정은이 핵으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김정은의 행동은 예측할 수가 없어서 핵을 사용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핵은 사용 전에 보유 자체가 위협이 되는 무기다.”
“핵을 가진 나라는 핵을 쏘지 않고도 상대방을 제멋대로 가지고 놀면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북한이 집요하게 핵개발을 하는 것도 보복에 대한 걱정 없이 우리를 향해 게릴라, 소규모 정규전을 비롯해 각종 수준의 전쟁을 마음껏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핵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핵을 갖는 순간 북이 택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5차 핵실험은 그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美 핵우산은 문서로도 보장 못해
―우리 대북 전쟁 전략은 유사시 선제 타격 시스템인 킬체인이나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다. 9일 국방부는 북이 공격하는 순간 지휘부를 직접 타격하겠다는 KMPR(대량응징보복)를 추가했다.
“지금까지 한미 전략은 북핵이 실전 배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래식 무기로 선제공격을 할 경우 방어하고 반격을 통해 승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핵이 실전 배치되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된다. 북이 핵을 쏠 조짐을 보이면 타격하겠다고 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이동식발사대가 옮겨 다니면서 쏘고, 터널에서 숨어 있다가 쏘고, 칠흑 같은 바닷속 잠수함에서 쏘는데 사전에 어떻게 알 수가 있겠나. 안다 해도 아는 순간 그걸 막을 시간적 여유도 없고 이미 핵 공격으로 초토화된 마당에 반격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남한이 경제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북한에 수십 배 앞섰으면서도 북에 쩔쩔맸던 이유가 군사력 때문이었는데 핵까지 얹혀지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된다.”
―일각에서는 전술핵을 다시 배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드 배치도 못 하고 있는데 전술핵이 될 것인가. 게다가 한번 철수시킨 것을 미국이 다시 재배치할 리 없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한국이 핵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핵으로 막겠다는 핵우산도 있지 않은가.
“핵우산은 문서로 보장될 수 없다. 최종 순간 미국 대통령은 물론이고 의회까지 결심해야 한다. 미국이 핵 공격을 할 경우 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턴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건데 과연 미국이 할 수 있을까. 실제로 프랑스는 ‘미국이 지켜줄 테니 핵을 갖지 말라’는 요청에 대해 ‘그럼 파리를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는가’ 물었다. 미국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프랑스인들은 미국이 가진 수천 발의 핵폭탄보다 프랑스가 가진 몇 개의 핵폭탄이 프랑스 국가안보를 위해 훨씬 유용하다는 논리를 폈고 핵무장을 단행했다.”
―핵무장은 한미 동맹을 치명적으로 훼손한다.
“우리가 독단적으로 막무가내로 하자는 게 아니다. 미국을 설득하자는 거다. 알다시피 미국도 기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가.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대놓고 한일 핵무장을 지지하고 있고 민주당 주자 힐러리 클리턴도 한국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눈치를 볼 일이 아니라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서 이해를 구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미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전면 철군을 주장하자 거세게 반대하다가 여의치 않자 ‘갈 테면 가라’는 식으로 큰소리를 쳤다. 미국은 박 대통령이 핵개발을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고 결국 더 적극적으로 한국 안보를 책임져 주는 것으로 해결이 됐다. 주한미군 철군 계획도 접었다.”
이 박사는 한국의 핵무장이 중국을 자극한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사실상 방치, 지원했던 나라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북핵을 제거하는 데 중국이 앞장서야 한다는 미국 관리의 요청에 아예 ‘불가능한 사명(Mission Impossible)’이라고 못 박았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중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막을 자격도 능력도 없다. 실제로도 중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완벽한 핵무장 국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이 핵을 만드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하겠다고 나서면 일본 대만까지 나설 텐데 이러다 다 죽는 것 아닌가.
“핵 도미노가 오면 오히려 평화가 온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다. 외교의 달인이라 일컬어지는 헨리 키신저(전 미국 국무장관)는 ‘서로 이웃한 나라가 핵을 갖는 것은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는 것과 같다’고 했다. 미국의 유명한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도 ‘더 많은 국가가 핵무기를 가지면 오히려 평화가 온다. 핵무기란 보복당할 줄 알기 때문에 공격할 수 없는 무기’라며 ‘핵 평화론’을 폈다.”
200년간 66개국이 사라졌다
―우리가 기술은 갖고 있나.
“미국이 1945년 7월 16일 최초 핵실험에 성공했으니 핵 기술은 70년이 다 돼가는 오래된 기술이다. 한국보다 과학이나 산업기술력이 뒤처지는 것으로 인식되는 인도 파키스탄도 갖고 있지 않은가. 재래식 무기로 대응하는 데 천문학적 돈이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핵무장으로 국방비를 줄일 수 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1년 6개월 안에 핵무장을 끝낼 수 있다고 한다. 핵무기는 ‘의지’의 문제이지 돈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처럼 위태로운 안보 환경을 가진 나라가, 그것도 월등한 경제력과 기술력을 가진 나라가 핵무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핵무장을 하려면 미국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그는 이 대목에서 목이 마른지 냉수 한 컵을 들이켠 뒤 말을 이었다.
“우선 국민의 총의를 모아야 한다. 국민이 단합하지 않으면 외부의 반대와 외압을 이겨내기 어렵다. 여야 대표들과 끝장토론이라도 해서 의견을 모으고 필요하면 국민투표라도 해야 한다.”
인터뷰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주말을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도로는 붐비고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저 젊은이들에게 지금처럼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까…. 그의 마지막 말에 기자는 소름이 돋았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6년부터 2000년까지 207개 국가가 존재했는데 이 중 약 3분의 1인 66개국이 없어졌다. 이 중 50개국이 이웃 나라의 무력 공격에 의해서 망했다. 국제사회에서 살아간다는 일은 이처럼 위험한 일이다. 모두 안보, 즉 생존을 국가 제1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작고 약한 나라들은 고슴도치처럼 맹수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가시’가 있어야 한다. 북이 조만간 핵무기 체제를 완전히 갖추는 날 한국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된다. 이를 피할 수 있는 ‘궁극적 방법’이 ‘핵무장’이라는 사실은 지난 70년 동안 핵전략 이론가들이 합의한 최종 결론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