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의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소와 병기제작소로 흘러들어간 징용자들을 기다린 것은 원자폭탄 ‘팻맨(Fat Man)’이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뭔지 모를 신가타(新型) 폭탄이 떨어져 피해가 엄청나다는 소문이 나가사키까지 퍼졌다. 3일 뒤 미군은 팻맨을 나가사키 북쪽의 고쿠라에 떨어뜨리기 위해 출동했다. 이곳에서 공습경보에 놀란 일본인들이 콜타르를 태워 연기를 피워 올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육안으로 투하 지점을 확인 못 한 B29는 기수를 나가사키로 돌렸다.
▷팻맨은 반경 15m를 30만 도의 불덩어리로 만들었다. 끓어오른 땅의 온도는 3000∼4000도였다. 폭심지에서 4km 안에 있는 사람들은 증발하거나 옷과 살갗이 녹아 버렸다. 목이 탄 피투성이 부상자들은 몸통과 붙지 않도록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올린 채 마실 물을 찾아 헤매 다녔다. 한수산은 피폭 부상자에 관한 일본 자료를 번역하던 아내와 딸이 “도저히 못 하겠다” “밥을 못 먹겠다”고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해 나가사키에서 숨진 7만여 명 중 2만여 명이 징용자를 포함한 한국인이었다. 일본 구호대는 ‘아이고 아이고’ 신음하는 한국인들은 제쳐놓고 ‘이타이 이타이’라고 하는 부상자들에게 달려갔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