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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작의 한국 블로그]헷갈리는 버스노선, 외국인 가족상봉의 걸림돌

입력 | 2016-09-13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콘작 독일 출신 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

고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다 보면 가족의 얼굴을 보기 어렵다. 내가 고향을 찾아가거나 가족이 직접 나를 찾아오지 않으면 만날 기회가 없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떻게 할까. 한국에 사는 외국인 중 가족이 한 번이라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가족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 7월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내가 그 모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야 했다. 다른 나라를 처음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세워야 할 중요한 계획은 단연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를 정하는 것이다.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이해하는 데 음식만큼 쉬운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위해 정한 장소는 서울 동대문이었다. 동대문은 중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모이는 명소다. 그곳 주변에 가면 작은 식당들이 줄지어 있어서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 건축물인 동대문(흥인지문)을 보는 것도 아주 인상적이다. 어머니는 동대문에서 처음 김밥을 먹은 뒤 한국을 사랑하게 됐다고 내게 일러줬다.

거리 곳곳에 맛있는 음식이 많지만 음식만으로 한국을 전부 여행했다고 말하긴 부족하다. 이런 면에서 서울은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적합한 도시다. 서울에는 웅장한 궁궐과 절, 박물관 등 한국을 공부할 수 있는 장소들이 가까이 모여 있다. 동대문에서 음식을 먹은 뒤 경복궁을 구경하고 국립민속박물관에 가면 가족을 위한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한 번에 다 하게 된다.

이 외에도 한국을 즐기기 좋은 장소는 많다. 한국의 저녁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보자. 내가 추천하는 건 한국 맥주다. 맥주 역사가 깊은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맥주를 즐긴다고 하면 다들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사실 요즘에는 크래프트 맥주(수제 맥주)가 한국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외국 못지않게 다양한 맥주가 시장에 나오고 있다는 의미이다.

어머니와는 궁과 박물관을 구경한 뒤 용산구 이태원의 루프톱 술집에 갔다. 그 술집은 옥상이나 발코니에 만들어진 자리에서 하늘을 보며 선선한 바람과 함께 술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양조장에서 바로 나온 신선한 에일맥주를 마시며 서울의 야경을 함께 구경했다. 역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기뻐하기엔 너무 일렀다. 대중교통이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고 지상에서 길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한국에 처음 온 부모님처럼 한글을 모르거나 길을 모른다면 더더욱 힘들다. 한국인에겐 편리하지만 외국인들은 길을 찾기 어렵다. 버스 노선과 색깔이 많다 보니 그렇다. 자칫 길을 잃을 수 있는 가족을 데리러 매일 아침과 저녁에 호텔 앞으로 가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가족의 전용 운전기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과 종로구 인사동을 거닐 때에도 가끔 답답한 경우가 있었다. 부모님에게는 한국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당연히 새롭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인사동에서 한국의 민속 소품을 구경하며 내 눈엔 똑같아 보이는 부채를 100번이나 자세히 살펴보고 있을 땐 뒤에서 몰래 한숨을 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투정도 했지만 타국에서 부모님을 만나는 건 좋은 경험이다. 고향을 떠나 문화가 다른 먼 나라에서 살고 있을 때 가족만큼 위로가 되는 존재도 없다. 그들이 맛있는 고향의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것도 좋지만 타국의 음식을 나눠 먹으며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늘 그리워했던 얼굴을 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의 방문으로 겪는 작은 불편함은 사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행 마지막 날 공항에서 부모님을 꼭 껴안아 드렸다. 품에서 들리는 그들의 한숨과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는 순간 알게 됐다. 이미 나는 부모님의 다음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콘작 독일 출신 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