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을 담아내는 마당이다. 집 안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이웃끼리 정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 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년 반 전 인왕산 자락 서촌 체부동의 작은 한옥으로 이사했다. 전체 면적은 전과 같은 80m²이지만 건평은 43m²이다. 60년 된 ‘ㄷ’자형 한옥을 욕실과 싱크대를 빼곤 전통방식으로 대수선했고, 혼수였던 침대와 장롱을 비롯해 많은 물건을 버렸다.
한옥에 산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한옥으로 이사하니 어때?”라고 꼭 묻는다. 걸어서 출퇴근하고, 주변에 좋은 술집이 많다고 농으로 답하지만 정색하고 다시 물으면 답은 보통 세 가지다.
옆집들과 무던히도 싸웠다. 동네 공적이던 옆집 냉동팬은 결국 뜯어냈고, 반대편 옆집 담벼락과 빗물받이도 새로 고치도록 했다. 뒷집 공방 에어컨 실외기는 위치를 옮겼고, 집 앞 골목 불법주차도 몰아냈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평화를 얻었다. 공정하려고 애썼기에 이웃들과 서로 이해하고, 잘 지내고 또 긴장한다.
외부 자연을 특화하는 수많은 공동주택 브랜드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그 공동주택은 콘크리트 박스 형태다. 환기조차 설비에 의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자연이 차단되는 동시에 이웃과의 소통도 차단된다. 심지어 소통하려는 노력조차 차단되기 쉽다.
둘째는 마당이다. 혹자는 마당이 그 면적만큼 고층건물을 소유한 것과 같다고 표현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동감한다. 우리 마당이 12m² 정도이니 그 정도 건물을 소유해 얻는 수익만큼 만족감이 크다. 만족감은 활용도에 달려 있다. 아침저녁으로 마당을 즐기기 위해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려 노력한다. 술과 책과 음악 정도인 취미의 8할은 마당에서 채운다. 특히 봄과 가을 쪽마루에 누워 햇볕을 독점하는 건 하늘이 내린 한옥 거주자의 특권에 속한다.
우리 집은 마당을 거쳐야 집 안에 들어설 수 있기에 마당은 일종의 전이지대다. 이웃은 일단 골목에서 만나지만 친해지면 대문을 넘어온다. 차나 술도 무시로 끼어든다. 밤이 늦더라도 눈치껏 술과 안주를 조달하고, 흔적만 안 남긴다면 집사람도 모른 체한다.
익명성의 도시에서 한옥과 마을은 소도처럼 이질적이다. 관리사무소 같은 대행자가 없는 삶은 대의민주주의와 대별되는 직접민주주의처럼 차별화된다. 한옥에 사는 일은 결국 주변에 나를 내보이는 삶의 방식을 취한다. 한옥에 살고 싶다면 먼저 나를 내보일 수 있는지 답하는 게 우선이다.
온수진 서울시 푸른도시국 주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