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 디젤 잠수함의 임무는 적 항구나 수로 근처에 기뢰를 부설하고, 군수 지원 상선을 격침하거나 군함을 제한적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당시 잠수함은 적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수중에서 고속으로 무제한 작전이 가능한 원자력 잠수함이 등장하면서 ‘한물간 영웅’으로 뒤처지기 시작했다. 매일 2, 3회씩 축전지를 충전하기 위하여 부상해야 하고 축전지의 성능을 아무리 개선해도 물속에서 견딜 수 있는 기간은 3∼5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강대국들은 물속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감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잠수함에는 수중에서 SLBM 탑재 잠수함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새로운 임무가 부여되었다. 이 임무는 수중에서 상대 잠수함보다 1.5배 이상의 속력으로 24시간 기동하며 핵무기를 발사하지 못하게 억제하는 작전인데, 시속 10km 정도로 기동하며 충전을 위하여 수면 가까이 올라오는 디젤 잠수함은 불가능한 작전이다.
북한이 SLBM을 개발한 지금, 우리도 SLBM 잠수함을 추적 감시해야 하는데 우리에겐 그런 능력을 가진 원자력 잠수함이 없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무기를 수중에 방치할 것인가.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과 연합작전을 강화하여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한국 단독으로 추적할 수 있는 원자력 잠수함을 확보하는 것이 그 대응 방안이다. 그동안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확보 논의를 유보했던 원자력 잠수함이 이제는 북한의 SLBM 개발로 인해 안보 필수품으로 부각되고 있다.
일각에서 원자력 잠수함은 소음이 크고 덩치가 커서 북한 연안에 갈 수 없으며 비싼 사치품이라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올 4월 수심이 얕은 북한 신포 앞바다로 미국의 8000t급 원자력 잠수함이 은밀하게 접근하여 SLBM 시험발사 장면을 잠망경 카메라에 담았다는 이야기까지 해야 믿을까 싶어진다. 원자력 잠수함은 원자로 소음이 커서 쉽게 탐지된다는 말도 소음제어 기술이 낙후된 1980년대 말까지의 이야기다. 가격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러시아의 잠수함들은 핵무기와 더불어 다양한 첨단 장비를 탑재하기 때문에 비싸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원자력 잠수함은 주로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을 추적 감시하는 임무를 맡기 때문에 지금 건조하고 있는 잠수함의 두 배 가격이면 족하다. 북한의 수많은 디젤 잠수함과 SLBM 탑재 잠수함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디젤 잠수함을 다소 줄이더라도 반드시 원자력 잠수함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에게 원자력 잠수함은 더 이상 안보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다. 외교로 막지 못한 북한의 핵무기 개발, 군사적으로라도 막을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문근식 예비역 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