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밤 경북 경주에서 리히터 규모 5.1의 전진(前震)에 이어 1978년 기상청 관측 이래 역대 최대 규모인 5.8의 본진(本震)이 일어났다. 서울까지 진동이 전해져 많은 국민이 난생처음 겪는 강진의 공포와 충격으로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한반도 지각에 불균형 상태가 일어나면서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 분명해졌는데도 정부 대응은 안이하고 허술했다.
국민안전처의 재난알림문자는 지진 발생 9분 후에야 영남지역 주민들에게 도착했다. 안전처 홈페이지까지 먹통이 돼 주민들은 ‘건물이 흔들릴 때는 움직이지 말라’는 대피 요령을 알 수 없었다. 영남지역 휴대전화와 카카오톡 등이 끊겨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무작정 뛰쳐나온 주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국가 재난 주관 방송인 KBS는 드라마를 내보내면서 3분 만에야 자막을 띄웠다. 총리 지시 역시 사태 발생 2시간 후에야 나왔으니 세월호 참사 때의 “대통령 어디 있었느냐”는 개탄이 또 나올 판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안전 컨트롤타워로 출범시킨 것이 국민안전처다. 안전처는 올해 5월 27일 범정부 차원의 ‘지진 방재 개선 대책’을 마련해 총리 주재 제9차 국민안전 민관합동회의에서 확정지었다고 요란하게 홍보했다. 특히 “가시적 성과 달성이 가능한 매뉴얼 및 대응체계는 조속히 시행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부산시가 민방위경보통제소를 통해 “인근 학교 운동장으로 대피하라”고 안내방송을 했지만 상당수 학교는 교문을 걸어 잠가 놓았다니 기가 막힌다. 책상머리에서 그럴듯한 매뉴얼만 만들 뿐 현장까지 움직이지는 않는 이 정부의 고질적 무능과 무책임은 세월호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이번 지진을 거울삼아 지진방재 대책을 전면 재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책상 위 보고서로 재점검을 끝낸다면 같은 잘못이 반복될 것이 뻔하다. 부산의 한 고교에서는 학교 건물이 흔들리는데도 “가만있으라”며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달라지지 않은 공무원, 특히 안전처 공무원들은 각성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