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통산 ‘600홈런―1’까지 걸어온 길
삼성 이승엽
21년 전 프로야구 경기 기록이다. 이제 프로야구에는 무등구장도, 해태도 없다. 챔피언스필드와 KIA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경기를 쥐락펴락했던 선수들도 이제 코치와 해설가가 돼 무대 뒤로 한발 물러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예외다. 이날 프로 데뷔 첫 홈런포를 쏘아 올렸던 당시 ‘고졸 신인’ 이승엽(40)이다.
2년마다 100홈런을 추가한 이승엽은 2003년 세계 최연소 300홈런까지 탄탄대로를 달렸다. 승부사 기질도 여전했다. 300홈런을 달성한 뒤 이승엽은 “40개를 치면 50개, 50개를 치면 55개를 향해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세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그해 아시아 최다 홈런(56홈런) 기록까지 정조준했다. “독기를 품었다. 내가 가진 기량을 모두 마지막 경기에 쏟아 붓겠다”던 이승엽은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오 사다하루가 39년간 지켜온 기록을 갈아 치웠다.
2004년 일본 진출 첫해 14홈런에 그치며 슬럼프에 빠졌지만 이듬해 30홈런을 날리며 부활을 알린 이승엽은 2006년 한일 통산 400홈런을 달성했다. ‘400홈런을 달성해 앞으로 편하겠냐’는 질문에 대한 이승엽의 대답은 당시 일본에서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프로선수로는 실격이다. 마지막까지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전성기를 넘긴 2012년 국내에 복귀해 500홈런을 기록했을 때도 야구에 대한 이승엽의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단일리그가 아니라 한일 통산이기 때문에 너무 기뻐하진 않겠다. 아직 더 많은 목표가 남아있다.”
20년이 넘는 동안 야구 선수로 그가 남긴 기록은 산악인으로 따지면 히말라야 14좌 등반에 견줄 만한 이력이다. 정상까지 오르고 내리기를 숱하게 반복하며 그가 깨달은 것 역시 산악인들의 깨달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야구를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록은 자연스럽게 깨질 것이다. 기록보다는 어린 선수들에게 모범적인 선수로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 이승엽이 오늘도 가장 먼저 경기장에 나와 타격 훈련을 하고 후배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는 이유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