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열흘도 전부터 점심을 먹을 때면 어머니는 동네에 대목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배추 값이 얼마나 뛰었는지,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나는 차례 음식은 한 접시씩만 하고 요즘 구경도 하기 어렵다는 비싼 시금치 대신 부추를 데쳐서 상에 올리고 햇김치로는 열무김치를 담그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지만 어머니 또한 내 말을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다. 오늘은 아버지까지 대동해 의기양양하게 시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니 시금치도 사고 배추도 여러 통 사실 모양이다. 추석이라고 나이든 부모는 장을 보러 나가는데 나는 식탁에 턱 하니 앉아 일간지들을 펼쳐 놓고 읽는다. 재료가 다 준비될 때까지는 여유를 좀 부려도 좋지 않을까. 우리 집 전 부치기 담당은 바로 나니까.
생선전 고구마전 애호박전 깻잎전 동그랑땡까지, 재료 준비가 다 됐다. 주방기구로는 프라이팬과 요리용 긴 젓가락, 그리고 뒤집개. 손잡이에 열전달이 덜 되는 실리콘 제품이 좋지만 어머니 부엌에 있는, 전체가 스테인리스로 된 구식 뒤집개도 괜찮다. 곤란한 건 필요한 순간에 뒤집개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을 때.
하성란 단편소설 ‘옆집 여자’에 보면 이사 온 옆집 여자가 저녁 시간에 주인공 집으로 뒤집개를 빌리러 오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뒤집개 하나를 빌리면서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그 후 어떻게 전개될 것 같은가? 뒤집개를 들고 프라이팬 앞에 서 있을 때면 이 단편소설이 떠오르고는 한다. ‘뒤집개’ 같은 사소한 물건으로도 부조리해져 버리는 일상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바로 작가의 힘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베를린과 상하이, 버클리, 로마의 아파트들과 숙소에서 세계 작가들과 혹은 혼자서 몇 달씩 체류하게 될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구입했던 물건들 중 하나가 뒤집개다. 공동 부엌이든 혼자 쓰는 부엌이든 저녁은 야채를 채 썰어 전을 부쳐 먹곤 했는데 그게 의외로 다른 거주자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같이 저녁을 만들어 먹는 날이나 각자 한 가지씩 음식을 준비해 가야 하는 날이면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전을 부쳤다. 내가 살았던 여러 도시의 키친들마다 나는 싸고 볼품없어 보이는 뒤집개 하나씩을 걸어두고 왔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있었기를.
지금까지 받은 잊을 수 없는 선물들 중에 조셉조셉의 키친 툴 6종 세트가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역시 뒤집개.
장을 보고 돌아온 부모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앞치마를 두르고 느긋하게 전을 부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런 날은 선물로 받은 최신형보다는 어머니의 오래된 뒤집개가 손에 더 편하다. 어쩌다 마음이 사나워져 있을 때라도 뒤집개를 들고 불 앞에 있는 순간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그 뒤집개가 닿은 음식을 먹을 사람이 바로 가족이니까.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