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기간 국내 TV를 통해 방송된 북한 최악의 홍수 피해 영상에 가슴 아팠다는 시청자가 적지 않다. 토사가 밀어닥쳐 폐허가 된 마을엔 주택 지붕과 굴뚝만 보였고 복구 현장에선 ‘청년돌격대’가 맨손으로 돌덩이를 옮겨 물길을 돌리고 있었다. 북한의 조선중앙TV는 “물살이 세고 모래가 많아 기계화 수단을 쓸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동원할 만한 중장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피해 현장을 공개한 것도 외부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초까지 북에서 ‘해방 이후 처음 있는 대재앙’이라고 보도한 대홍수가 일어났는데도 북한 김정은은 9일 5차 핵실험을 했다니 기가 막힌다.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함경북도에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가운데 당국이 발전용 댐을 예고 없이 방류해 지금까지 138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실종됐다. 현장을 실사한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12일 집을 잃어 긴급 지원을 받아야 하는 두만강 유역의 이재민이 14만 명이라며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별경제구역인 나선시까지 해마다 수해를 겪는 것은 ‘주체농법’이라며 전국의 산지를 계단식 논으로 만들어 민둥산이 된 탓도 크다는 지적이 있다.
홍수 예고 시스템 미비 등으로 인재(人災)를 키우고도 북한은 14일 평양 주재 아시아 9개국 대사들을 불러 “핵무장을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겠다”면서도 “큰물(홍수) 피해 사업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핵무기 제조에 적어도 15억 달러를 투입해 국제사회를 위협한 북한이 원조를 요청하니 냉랭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김정은은 핵실험 4일 만인 13일 군부대 농장을 시찰하며 활짝 웃는 모습이 보도됐다. 핵무기를 손에 쥐면 주민이야 어찌 되든 자기 보신엔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고위 간부들은 언제 처형당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주민은 죽지 못해 삶을 이어간다면 김정은 정권도 ‘고난의 행군’을 또다시 강요하기는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