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수석논설위원
1년 전쯤, 작가 서영은 선생에게서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북한 김정은의 광기가 신령스러운 땅을 노하게 만들고, 결국 애꿎은 사람들만 큰 피해를 당할 것이라고 했다. 서영은은 몇 년 전 산티아고의 길을 20여 일 순례하면서 죽음에 직면했고, 그때 하느님을 목격했다고 토로할 만큼 영성이 깊다.
북의 핵실험으로 대지가 노한다는 발상은 비과학적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가슴에는 울림이 있었다. 최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북한의 5차 핵실험 때문이라는 루머가 SNS에서 확산된 바 있다. ‘북의 잦은 핵실험으로 지반에 영향을 일으켜 지반이 약한 경주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다’는 내용이다. 핵실험 규모가 워낙 컸긴 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과는 관계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정 의원이 오버해서 그렇지 ‘김정은의 핵 불장난이 초래할 백두산 천지의 화산 폭발, 한반도의 지진’ 경고에 대해선 공감하는 과학자들도 많다.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감돌았던 북의 4차 핵실험 직후 홍태경 연세대 교수는 핵실험이 잠자는 백두산 천지의 화산을 깨워 폭발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홍 교수 연구팀은 북의 2006년, 2009년, 2013년 3차례의 핵실험 실측자료로 규모 5.0∼7.6의 가상 인공지진 발생 시 지각에 가해지는 응력 변화 예측치를 도출해냈다. 그 결과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과 백두산 간 거리(116km)를 감안하면 백두산 분출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 결과는 세계적 과학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렸다. 백두산은 과거부터 여러 차례 폭발했으며 1903년 마지막으로 분출했다. 지금도 맨틀에서 올라오는 가스가 측정되거나 화산 열기로 고사목이 많아 활화산으로 분류된다.
김정은이 연내 6차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남 분열돼 있다. 국내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한 정세균 국회의장이 미 하원의장을 만나선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문제’를 지적했지만 ‘사드 배치에 반대 안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잘한 일이다.
오죽하면 50, 60대 1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선 후보 수입론까지 나왔다. 1번 두테르테, 2번 푸틴, 3번 시진핑 순이었다. 준비도 없이 남이 장에 가니 따라나서듯 대권 도전을 선언한 사람들은 곰곰 되새겨 보길 바란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