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경제부 차장
오죽 맥이 빠졌으면 ‘맹탕, 허탕청문회’(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깃털, 먹통 청문회’(심상정 정의당 의원)라는 반응이 정치권에서 나왔을까. 한시가 급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까지 미루고 여야가 석 달간 입씨름 끝에 내놓은 결과가 맹탕인데 반성하거나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없다. 구조조정과 경제 살리기의 ‘골든타임’을 허비한 서별관회의 청문회부터 청문회에 올려야 할 판이다.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위한 청문회가 열린다면 ‘서별관회의 건망증’부터 추궁해야 할 것이다. 국회 회의록 검색시스템에 ‘서별관’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서별관회의 관련 기록이 모두 55건 검색된다. 이 중 25건이 19대 국회 이전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등에서, 나머지는 이번 20대 국회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밀실회의’ ‘유령회의’라는 서별관회의가 문제였다면 이를 바로잡을 기회가 20대 국회가 들어서기 전에도 적어도 25번이나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그때마다 연기만 피우다 말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서별관회의가 한국에만 있는 은밀한 회의로 포장되는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증언을 종합해 보면 금융당국 수장들이 머리를 맞대는 비공개 회의는 미국에서 수입된 듯하다.
2012년 한국은행 국정감사장에서 김중수 당시 한은 총재는 “미국을 좇아서 하려고 그랬다”며 서별관회의 배경을 야당 의원에게 설명한 적도 있다. 실제로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루빈은 자서전 ‘불확실한 세계에서’에서 “매주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로런스 서머스 재무차관과 만나 가졌던 비공식 회의가 무엇보다 유익했다”고 밝혔다. 회의 내용을 외부에 누설하지 않기로 한 묵계도 지켜졌다고 했다.
구조조정과 같이 상대가 있고, 누군가 손실을 분담해야 하는 민감한 경제 현안을 다루려면 정부 주도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시장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하면 비공개 회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정책 당국에 대한 불신이 큰 한국에서 비공개 회의는 음모론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서별관회의가 문제가 됐을 때 정쟁 대신 비공개 회의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회의록을 작성하되 일정 시점(경과 기간 등), 일정 조건(국회의 동의 등)을 두고 공개하는 대안이라도 마련했다면 ‘서별관 소동’이 55번이나 반복되진 않았을 것이다. 맹탕 서별관회의 청문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