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나랏돈 400兆 ‘기재부 맘대로’… 타당성-성과 제대로 반영안돼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선 자동차 기계 분야 기업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주력산업 융합핵심기술개발’ 사업에 올해 3089억 원의 예산을 썼다. 지난해보다 251억 원(8.8%)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이 예산을 받은 기업 587곳 중 131곳(22.3%)이 영업손실을 냈다. 수혜 기업 중 손실 기업 비중은 2011년 9.1%에서 4년 새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사업의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292억 원 더 늘렸다. 전문가들은 “주력산업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정부가 이 분야 손실 기업 연구비로 수천억 원을 쓰겠다는 것은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겠다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1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내년 정부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400조 원을 넘을 정도로 나라 살림이 커졌지만 이런 식의 앞뒤가 맞지 않는 예산 편성이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예산 편성이 여전히 ‘베일 속’에서 비밀스럽게 이뤄지다 보니 일자리, R&D 등 조(兆) 단위의 나랏돈이 들어가는 분야에서조차 산업 현황이나 전년도 결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묻지 마 편성’이 이뤄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예산 편성 단계부터 집행까지 재정 당국이 모든 권한을 움켜쥐고 절대 갑(甲)으로 군림하는 탓에 사업 타당성 및 성과가 정부 예산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탓에 국회의원들은 ‘쪽지예산’ 등을 통해 예산 나눠먹기에 골몰하고, 각종 이해 당사자들은 인맥을 동원해 기재부 예산실에 민원을 넣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예산 사업들을 걸러내기 위해서라도 예산 편성의 투명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상훈 january@donga.com·신민기·손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