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예산 400조 ‘깜깜이 편성’]기재부 예산실의 ‘갑질’ 증액-삭감과정 철저히 비공개 국회 심의과정서 바뀌는건 2%뿐… 감사 안받고 결산심사도 형식적 기재부는 정부 부처의 ‘상원’ 他부처, 예산 깎일까봐 ‘몸낮추기’… 기재부 과장 면담에 국장급 보내
○ 예산 편성에 대한 외부 통제 거의 없어
정부 예산에 대해 매년 결산이 이뤄지지만 그 과정도 역시 형식적이다. 또 결산심사를 통해 문제점이 드러난다고 해도 국회가 다음 해 예산에 개선책을 반영하는 등 제재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다. 결산보고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시점은 이듬해 예산안이 거의 짜인 뒤이기 때문이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기재부가 국회의 지적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해 결산을 통해 예산 과다 편성과 집행 실적 부진, 유사·중복 등의 사유로 228개 재정사업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104개 사업의 예산을 오히려 증액했고 7개 사업은 예전과 같은 규모로 편성했다. 국회 지적의 절반가량(48.7%)을 무시한 것이다.
그나마 국회를 제외하면 예산 편성에 간여할 수 있는 국가기관이 전무하다. 예산 편성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감사원 감사가 이뤄지지 않은 ‘성역(聖域) 중의 성역’이다. 외부 통제가 미치지 않는 점을 노린 각종 꼼수도 횡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예산 부풀리기다. 기재부는 예산 편성 때 국회와의 딜(deal)을 염두에 두고 특정 사업의 예산을 미리 부풀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의원 등이 지역구를 위해 가져오는 ‘쪽지예산’ 등을 반영하기 위한 일종의 ‘그림자 예산’이다. 매년 이 같은 그림자 예산이 2조∼5조 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 관계자 얼굴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
올해 초 여당 중진의원 보좌관들이 대거 세종시를 찾은 적이 있다. 본격적인 예산시즌은 아니지만 이들은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들을 두루 만난 뒤 저녁 자리를 갖고 서울로 떠났다. 사전에 안면을 익혀두는 것이다. 또 이런 관계를 통해 예산 편성 단계부터 지역구 민원성 예산을 자연스럽게 반영한다. 한 의원은 “지역구 예산을 정부안에 반영하면 ‘고수(高手)’, 국회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 관철시키면 ‘중수(中手)’,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에서 쪽지예산으로 겨우 넣으면 ‘하수(下手)’라고 불린다”고 귀띔했다.
비경제 부처의 한 과장급 인사는 지난달 예산 협의를 위해 기재부를 다녀온 경험을 얘기하면서 “기재부 예산실에 갈 때마다 고역”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재부가 부처의 역점 사업을 손대려고 하자 부랴부랴 찾아갔지만 담당 사무관만 5분 정도 만나고 아무 소득 없이 돌아왔다. 일반 부처에서 예산 협의를 위해 기재부를 찾아갈 때는 담당자 직위를 한 ‘체급’씩 올리는 게 불문율이다. 기재부 과장을 만나러 갈 때 고참 과장이나 국장이 가는 식이다. 기재부 예산 담당 국장들을 만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무 과장을 만나더라도 10분 이상 대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른 부처들은 예산 편성을 의식해 평소에도 기재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거스르지 못한다. 올해 환경부는 내년도 예산안이 공식 발표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다. 경유가 인상 등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 기재부와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자칫 부처 역점 사업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그 어느 때보다 예산 편성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기재부는 자신들과 갈등을 빚은 부처의 장관 중점 사업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방식으로 각 부처의 군기를 잡는다”며 “기재부가 정부부처의 상원(上院)으로 불리는 것도 이런 데서 비롯됐다”고 전했다.
비밀주의 논란에 대해 기재부는 “예산 편성의 특성상 어쩔 수가 없다”는 반응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 편성의 세세한 사항까지 공개되면 정치권은 물론이고 각종 이해단체에서 온갖 로비가 들어온다”며 “많은 것을 공개하지 못하는 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